오늘과 다음 주일 전례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비유를 전해주고 있다. 그러나 그 비유는 알아들으려 하는 자세, 삶 속에 실천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예수께서는 배에서 비유를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이렇게 군중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는 모습은, 아마 사람들이 그분의 가르침보다는 그분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즉 제사보다는 잿밥에 있었기 때문에 그분에게서 멀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 같다. 이 비유의 말씀은 팔레스티나 상황에서 사실에 근거한 비유의 말씀이다. 그 지방의 환경이 그렇다. 조그만 땅덩어리, 돌투성이인 밭들, 농사를 짓기 위해 가시덤불을 헤치고 만든 좁은 길들의 모습이다. 이렇게 거친 땅이지만 모두 죽어버리지는 않으리라는 기대를 하고 씨를 뿌렸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제자들의 믿음을 더해주시고자 하신 비유이다. 이는 그래서 믿음에 대한 비유라고 정의할 수 있다. 씨를 뿌리는 분은 예수님 자신이시다. 예수께서는 많은 씨앗이 실패하더라도 결실이 있으리라는 사실을 당신 제자들에게 확신시키려 하신다. 그분의 사명은 씨뿌리기에 비교될 수 있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렇게 역사 속에 이미 시작되었고, 그 나라의 구원 힘은 힘차게 퍼져나가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내적인 자세이다. 복음의 내용을 보면 하느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우선 신자들이었지만, 자신들이 기쁘게 들은 복음의 내용을 생활 속에서 일치시키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러므로 문제는 하느님의 말씀이 최대의 결실을 낼 수 있는 땅이 준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비유를 설명해 주신다(18-23절). 길바닥에 떨어진 씨앗으로부터 가시덤불과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에 이르기까지 말씀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는지 설명하신다. 하느님의 말씀은 각별한 정성으로 보호되지 않는다면 시들어 죽는다. 즉 하느님의 말씀은 피상적이고, 세상 이익에 대한 애착 등에 집착되어있을 때는 절대로 공존할 수 없다. 그러기 때문에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하늘나라에 관한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하는”(19절) 사람들과 “그 말씀을 듣고 깨닫는”(23절) 사람들로 구분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백 배, 어떤 사람은 예순 배, 어떤 사람은 서른 배”(23절)의 열매를 맺는데, 이들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들이다. 이 깨닫는다는 것은 지적으로나 신학적 통찰력으로 깨닫는 것이 아니라, 실천적인 의미로 알아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복음의 말씀을 생활화하고 그 말씀으로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을 때, 올바로 깨닫는 것이다. 이제 그 말씀이 잘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그 밭에 있는 모든 돌과 잡초 가시덤불을 없애는 수고를 하여야 한다. 이 수고가 없으면 수확은 실패할 것이다. 수확이 실패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그 말씀을 바로 받아들여야 할 땅, 즉 우리 각자의 마음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사야는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의 말씀 능력을 찬양하고 있다. 비와 눈의 의미는 그 말씀의 풍부한 생산력과 강하면서도 부드럽게 변화시키는 힘을 말한다.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말씀이 본질적으로 지닌 변화와 쇄신의 능력이다. 하느님 말씀의 능력은 그분이 원하시는 바를 인간들의 차원을 넘어서 또는 그 반대의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이룰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을 실패로 돌아가게 하고 또 우리의 마음에 맡겨진 생명의 씨앗이 결실을 보지 못할 수 있으므로 말씀을 받아들이는 우리 마음의 밭이 중요하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로마서에서 하느님의 구원계획이 모든 만물이 생겨 나온(창세 1장) 태초의 그 말씀의 찬란한 영광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모든 피조물 안에서도 실현되기 위해서는 모든 어려움과 고통을 무릅써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장차 우리에게 계시 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우리의 몸이 속량 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로마 8,18.22-23).
하느님의 말씀은 모든 세대에 걸쳐 모든 사람에게 전해진다. 그들에게서 그 말씀이 결실을 거둘 수 있으려면 먼저 신앙을 가진 우리들의 삶을 통한 결실이 선행되어야 한다. 먼저 신앙을 가진 나에게서 결실을 보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 결실을 어찌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 말씀의 씨앗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마음의 밭에 있는 자갈이나, 잡초, 가시덤불 같은 장애가 되는 것들을 모두 없앨 수 있는 ‘수고’가 기꺼이 따라야 한다. 그 수고가 없이는 결실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말씀이 뿌리내리는 데 방해가 되는 세상과 세상의 이익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을 때 하느님의 말씀은 좋은 토양으로 준비된 우리 마음과 우리의 삶 속에서 큰 수확을 얻을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서 맺은 열매가 백배가 된 것도 있고 육십 배가 된 것도 있고 삼십 배가 된 것도 있었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마태 1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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