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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14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07-14 조회수 : 567

이렇게 말하면 사람이 무섭지 않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라고 하시며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신앙인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길은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는 방법으로 무엇을 말할까, 어떻게 말할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라고 하십니다.
사실 세상에서는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입니다.
이것을 이겨내려면 나의 것을 말하지 말고 주님의 말씀을 받아 전해야 합니다.  
 
누구나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연기를 하거나 연설하거나 글을 쓸 때 두려움을 느낍니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할지 몰라서입니다.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곧 자신의 정체성을 알리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복음을 전할 때 거부당하는 두려움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사제가 강론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경우는 강론의 준비가 너무 힘들어서 미사 울렁증까지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자들의 반응이 좋지 않을까 봐 걱정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불안과 걱정, 두려움은 ‘나’ 때문에 생깁니다. 내가 한 말 때문에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이미 내가 죽을 위험에 놓이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심리학자가 이유 없는 불안증을 조사한 결과
그 사람들이 ‘나’라는 말을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이 쓴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불안하지 않으려면 나를 없애야 합니다.
오늘 복음은 그 방법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영화 ‘로켓맨’(2019)은 팝 록 뮤지션 엘튼 존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그는 단호한 어머니와 자신에게 전혀 관심 없는 아버지 사이에서 사랑을 목말라하며 성장합니다.
그의 유일한 탈출구는 음악이었지만, 아버지의 사랑을 갈망해서인지 동성애자가 됩니다.
아버지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마음은 사랑받지 못한 자신이 드러나게 될까 봐 무대공포증을 일으킵니다.  
 
그가 어떻게 무대공포증을 극복하게 되었을까요? 그는 우선 사랑 받지 못해 사랑을 갈망하는 존재임을 받아들이고 무대 위의 과장된 새로운 정체성을 만듭니다. 
무대 위에서는 다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화려한 의상과 안경을 착용하고 예명을 사용함으로써 그는 연약한 자신과 대중이 보는 자기 페르소나와 거리를 두고 수줍은 레지 드와이트에서 화려한 엘튼 존으로 변신하면서 자신감을 얻습니다.  
 
이것이 복음을 전하는 이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려다가는 거부당하는 두려움 때문에 복음 전파를 오래 지속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정체성으로 한다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제가 신학생 때 어리석은 생각으로 동료 신학생과 논쟁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동해를 보고 있었는데 파도가 매우 높게 일고 있었습니다.
그 신학생은 파도가 저렇게 치는 이유는 바람의 영향이라고 했고 저는 달의 인력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분명히 어디에선가 본 것 같았습니다. 
 
사실 달의 인력 때문에는 밀물과 썰물이 생기는 것이고 파도는 바람의 영향이 더 큽니다.
그러나 저는 그 생각을 계속 주장하였습니다.
어차피 틀려도 내가 틀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런 잘못된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은 저의 실수입니다.
이런 경우 좌절에 빠지지 않고 쉽게 자신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말씀을 받아 전하면 그 말씀이 나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말씀 때문에 일어나는 결과에 대해서도
크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생각일 때에는 사정이 달라집니다.
화가 나고 분통이 터질 것입니다.  
 
강론 준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해서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이라고 믿는 것을 하면 부담이 없습니다.
“주님, 이번에는 신자들에게 어떤 말씀을 해주고 싶으세요?”라고 묻고 묵상을 해 봅시다.
그러면 그 묵상에서 나온 것을 강의할 때는 부담이 사라집니다.  
 
나의 생각을 말하면 신자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평가당한다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반응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고 나중에는 미사가 무서워집니다. 
 
기도로 받은 말만 전합시다.
그러면 강론의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고 미사가 편하고 즐거워집니다.
우리가 이웃에게 복음을 전할 때도 이것은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의 삶도 하나의 공연입니다.
나를 보여주지 말고 내 안의 그리스도를 들려주고 보여줍시다.
그러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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