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읽었던 ‘수도자처럼 생각하기’(제이 셰티)에서 읽었던 문장을 소개합니다.
“건강한 습관은 처음엔 하기 싫지만, 하고 나면 행복해진다. 건강하지 않은 습관은 처음엔 하고 싶지만, 하고 나면 기분이 좋지 않아진다.”
정말로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저를 ‘새벽형 인간’으로 부릅니다. 워낙 새벽에 일어나 일과를 시작한 지가 벌써 20년이 넘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사실 신부 되고 얼마 안 되었을 때만 해도 누구보다 늦게 일어났었고, 이를 당연하게 생각했었습니다. 저에 대해 사람들에게 ‘올빼미형 인간’이라고 소개하면서 말이지요. 그러나 항상 늦게 일어나는 저에 대해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어떤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저의 습관을 바꾸었습니다. 즉, 새벽에 일어나기를 실천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어떠했을까요? 하루 종일 피곤해서 하기 싫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행복했습니다.
처음에는 하고 싶지만 결국 기분 나빠지는 것이 참 많습니다. 운동 안 하기, 기도 안 하기, 책 안 읽기, 텔레비전 보기, 인스턴트 음식 먹기,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보기…. 이렇게 하길 바라고 또 쉽게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분은 점점 좋아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처음에 하기 싫은 것도 있습니다. 운동하기, 기도하기, 봉사나 희생 실천하기, 독서하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하기 싫은 것이기에 행동하는 것 자체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하고 나면 행복해집니다. 어떤 모습을 취해야 할까요? 진정한 행복을 위해 처음에는 하기 싫어도 하고 나면 행복해지는 건강한 습관을 지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모든 것을 떠올려 보십시오. 마귀를 쫓아내자, 바리사이들은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라고 모함합니다. 이 모함은 계속되어 나중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게 하기까지 합니다. 그런 모함을 멈추기 위해 그들에게 강력한 벌을 내려 어리석음을 꾸짖으면 안 되었을까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철저히 사랑만을 전해주십니다. 벌하시는 하느님이 아닌, 사랑의 하느님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진정한 행복으로 우리를 이끌어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구원의 길로 가는 우리를 바라보며 기뻐하십니다.
예수님처럼 하기 싫어도 하고 나면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일꾼이 필요하다면서,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라고 하십니다. 그런 일꾼들이 가득해야 우리가 모두 주님 안에서 사랑의 삶, 행복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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