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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7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07-07 조회수 : 348

<운명적인 만남> 
 
 
혹시 여러분들 인생사 안에서 삶 전체를 ‘확’ 바꾸게 된 운명적인 만남이 있으셨나요?
한 여자 분은 끔찍이도 사랑했던 연인과의 이별 이후, 세상이 싫어진 나머지 출가(出家)를 결심했다더군요.  
 
그래서 강원도 깊은 골짜기에 위치한 암자로 가기 위해 시외버스를 탔답니다.
그런데 그녀는 그 시외버스 안에서 운명적인 만남을 갖습니다.  
 
휴가 나왔다가 복귀하는 한 군인과 옆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그게 인연이 되어, 다시 세상으로 나오게 되었고, 지금은 그 군인과 가정을 꾸려 알콩달콩 잘 살고 있다는 군요. 
 
한 젊은 노숙인의 스토리는 더욱 극적입니다.
어쩌다 보니 삶이 폭삭 주저앉자, 방법이 없어서 노숙 및 구걸을 하게 되었답니다.  
 
사람들 왕래가 잦은 곳에 깡통 하나 놓아두고, 하릴없이 시간을 죽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한 신사분이 다가오더니 자세를 낮추고, 시선을 맞추더니, 몇 가지 질문을 던지더랍니다. 
 
“고향이 어디냐? 왜 이러고 있냐? 나랑 같이 새출발 해 볼 마음이 있느냐?”
그 신사는 인재 발굴의 대가였던 CEO였습니다.
진흙 속에 감춰진 진주를 찾은 것입니다.  
 
노숙인은 그 신사의 친절과 배려 덕에 승진에 승진을 거듭했습니다.
그 신사는 노숙인 덕분에 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운명적인 만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 역시 꽤나 운명적인 만남을 체험했습니다.
저는 젊은 시절, 이 땅의 산업화 역군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신부님을 만납니다.
그 신부님의 한 말씀 한 말씀, 보여주시는 삶의 단편 하나하나가 다 제게는 감동이요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그 만남 이후 저 역시 지체 없이 삶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우리네 인생사에 있어서 만남이라는 것,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우리 삶이 결정됩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의 색깔이 바뀔 수 있습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질이 바뀔 수 있습니다.

마태오 역시 운명적인 만남을 갖습니다.
그는 아시다시피 세리였습니다.
예수님 시대, 세리들은 죄인들의 대명사였습니다.  
 
식민지 백성이던 유다인들에게 당시 세리들은 매국노들이었습니다.
우리로 치면 ‘친일파’였습니다. 
 
당시 세리들은 요즘 우리나라로 치면 가난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고리대금업자’나 ‘사채업자’들과 비슷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들이 지나가면 사람들은 뒤통수에다 대고 침을 뱉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큰 악행을 저질렀던지, ‘세리가 지나가면 집 기둥이 떤다.’는 속담까지 나돌았습니다.

어쩌다보니 세리가 된 마태오였습니다.
꼼꼼했던 그는 매일 세관에 출근해서 열심히 세금을 걷고 장부에 기입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높은 이자의 사채를 빌려주었습니다.
제 때 원금이나 이자를 못 갚은 사람들의 집에 찾아가 눈을 부라렸습니다. 그것이 그의 일상이었습니다. 
 
그래서 꽤나 재산을 모은 마태오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자신의 일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왔습니다.
‘대체 이게 사는 건가? 이런 삶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언제까지 이 짓을 할 것인가?’
동족들의 따가운 눈초리도 부담스러웠습니다.
인생 자체가 고역이었습니다.

이런 마태오에게 예수님께서 다가가십니다.
세관에 앉아 자신의 인생에 대해 골몰하고 있던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라.”(마태오 복음 9장 9절)
“나를 따라라.”는 예수님 한 말씀이 마치도 천둥처럼, 큰 뱃고동 소리처럼 마태오의 골수를 뚫고 폐부 깊숙이 들어왔습니다.
위엄 있는 그분의 말씀을 그는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는 “예! 주님!”하고 일어섭니다.
세리 삶에 있어 전부라고 할 수 있던 장부도 던져버렸습니다.
금고도, 주판도 던져버렸습니다.
지체 없이 그분을 따라나섰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 살아가다보면 다양한 순간, 다양한 주님의 초대를 받습니다.
주님께서는 수시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내 나이가 이제 70, 80, 90인데, 이 나이에 무슨 소명이며 초대?’ 라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성령 안에 머물고, 주님의 말씀 안에 생활하다보면 우리를 부르시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단 우리 역시 목숨 다하는 날까지 주님께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져야 할 것입니다.  
 
“주님, 지금 이 순간, 제가 무엇을 하면 좋겠습니까?”
이제 이 세상 소풍 끝내고 주님께로 돌아가실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들과 환우들에게도 부르심이 반드시 있습니다.
또한 그 부르심에 응답해야 할 사명을 갖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많은 경우, 안타깝게도 우리 노인들과 환우들을 고통에로, 소외감에로, 수치스런 현실에로 초대하십니다.

그렇다면 응답은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이 고통에 대한 의미부여 작업입니다.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도 당당하게 살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심을 확신하며 사는 것입니다.
고통이 커질 때 마다 더 깊이 우리 주님의 고통을 묵상하며 그 고통에 합일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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