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존재이다. 그러므로 어떤 면에서 인간은 눈에 보이는 하느님이다. 그러기에 모든 인간은 다 하느님과 만남의 기회요 장소이다. 나그네 대접에는 인간적 차원 외에 거룩한 차원이 내포되어 있다. 수넴의 여인은 그 점을 확언하고 있다. “우리 집에 늘 들르시는 이분은 하느님의 거룩한 사람이 틀림없습니다.”(2열왕 4,9). 그 여인은 엘리사를 극진히 대접하였고, 하느님께서는 아기를 낳지 못하는 그녀가 아들을 갖게 보답해 주셨다. 나그네 대접은 그것을 받지 못하면 죽을 수도 있으므로 생명의 행위이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생명을 나그네 대접에 대한 보상으로 주시고 계시다. 신앙으로 베풀어지는 나그네 대접은 우리가 하느님 말씀의 선포자가 되게 해줄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데 있어서 장애가 되면 끊어버려야 할 것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제자에게는 그리스도만이 절대적 가치이기 때문에 나머지 모든 것은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38절) 그분을 따르고자 한다면, 십자가를 감수해야 한다.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십자가는 하느님과 진리에 충실하신 그분 존재의 본질적 차원이었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과 형제들을 위해 행동하셨던, 그래서 당신 자신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 역시 이렇게 살아야 한다. 그분의 길을 철저히 따라야 하기 때문이며, 생존을 위한 타협이나 자신의 취향에 따라 행동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져서는 안 된다.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40절)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사도들에게 행하는 것이 곧 당신에게 행하는 것이라고 하신다. 사도들을 맞아들임으로써 복음선포를 돕는 사람은 복음선포 그 자체에 참여하는 것이다.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고,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41-42절). 여기서 맞아들인다는 말은 수넴의 여인이 예언자 엘리사에게 했던 것과 같이 복음을 전하는 자에 대한 나그네 대접으로, 신앙을 통해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느님의 도구로 봉사하는 사람들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때 예언자는 예언자로 인정을 받게 되고 옳은 사람은 옳은 사람으로 인정을 받게 된다. 그러기에 사도로 파견받지 못했지만, 사도들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
교회는 이렇게 사도적인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 오늘 복음에서 예언자, 옳은 사람, 보잘것없는 사람들(41-42절)은 모두 복음 선포자들을 가리키는 말로 구약성서의 예언자들과 연결된다. 그리고 복음을 선포하는 데 있어서 요구되는 성덕의 의무를 강조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들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맡기신 복음선포 사명이다. 자신은 죽임을 당한다 해도 그리스도께서는 승리하셔야 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 우리에게 요구되는 철저한 자기 포기이다. 바오로 사도는 이 점에 대해서 로마서에서 세례로 설명하고 있다. 세례성사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묻힘에 참여케 함으로써 부활에 참여케 해준다. 십자가는 십자가로만 남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세례를 통해서 그리스도 신자의 죽음과 생명 두 순간이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우리 안에서는 죽음과 생명이, 선과 악이, 하느님의 뜻과 세상이 원하는 것이 끝없는 갈등을 벌일 것이다. 이 갈등이 우리에게 매일의 십자가로 나타날 것이다. 이 갈등을 겪어야 하는 나 자신이 바로 나의 십자가이다. 그래서 복음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 우리는 모두 우리의 십자가를 통하여 복음을 선포하여야 한다. 그렇지 못하더라도 복음 선포자들에게 협조함으로써, 그들이 더욱 복음을 선포하는데 잘할 수 있도록 한다면, 우리는 그들과 같은 상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를 선택하고 선포하는데 장애가 되는 것을 하나하나 없애면서 절대가치이신 그리스도를 선택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삶이 될 때, 우리의 삶도, 이 사회도 아름답게 변화되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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