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 8,1-4
영성체, 이 얼마나 놀랍고 은혜로운 대사건인지요?
복음서 안에는 죄많고 허물투성이인 우리 인간을 쓰다듬는 주님의 모습이 자주 소개되고 있습니다.
상처투성이인 우리의 환부를 존귀하신 당신 손으로 어루만져주시는 장면이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
한 나병 환자와의 만남이 가장 대표적인 예입니다.
한 가련한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다가와 무릎을 꿇습니다.
나병 환자는 얼마나 절박했던지 율법을 어기면서까지 예수님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예수님 시대 당시 가장 가련한 사람들이 나병 환자들이었습니다.
하느님께 죄를 지은 결과 나병에 걸린 대죄인 취급 받았습니다.
불경스럽고 부정탄 인간, 상종하거나 접촉하지 말아야 할 사람들로 여겨졌습니다.
더 나아가서 나병에 걸리면 일종의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나병 판명을 받으면 가족과도 생이별을 해야만, 살고 있던 주거지를 떠나 성 밖으로 나가 살아야만 했습니다.
움막을 짓고 들짐승처럼 그렇게 살았습니다.
생사가 궁금했던 가족은 멀찌감치 생필품이나 식료품을 던져놓고, 목이 터지도록 나병 환자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운이 좋으면 겨우 챙겨갈 수 있었습니다.
길을 지나가다가 인기척이 느껴지면, 나병환자들은 즉시 목청을 높여 ‘여기 부정 탄 사람 있으니
조심하십시오!’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도 율법을 준수하려 하셨다면, 당신 가까이 다가오는 나병 환자를 향해, ‘당장 내 앞에서 물러가라!’라고 외치셔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행동을 보십시오.
나병 환자의 가련한 모습에 예수님 마음은 찢어질 듯이 아프셨습니다.
자동으로 마음 깊숙한 곳에서 연민과 측은지심의 정이 솟구쳤습니다.
예수님 손이 자동으로 그의 썩어 문드러진 환부에 가 닿았습니다.
이윽고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마태 1,41)
이 얼마나 놀랍고 은혜로운 대사건인지요?
하느님께서 한 가련한 인간에게 다가오셨습니다.
몸을 굽혀 그의 고통과 상처를 바라보십니다.
존귀하신 하느님의 손이 흉측한 인간의 피부에 직접 와닿았습니다.
하느님의 손가락이 고름투성이인 우리 인간의 피부에 터치하신 것입니다.
참으로 놀랍고도 파격적인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더 놀라운 일이 있습니다.
그런 접촉이 우리가 매일 봉헌하는 미사 안에서도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 존귀하신 하느님께서 매일 우리를 터치하시러, 우리 안에 머무시려 찾아오실 것입니다.
그저 기쁘고 감사한 마음, 황공스런 마음으로 정성스레 영성체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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