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 6,7-15
한없이 겸손하고 진솔하며 인간미 넘치는 사람!
결정적 회심 이후 바오로 사도가 얼마나 새로운 인간으로 재탄생되었는지를 본인이 저술한 여러 서한들을 통해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회심 이전의 그는 세상에서의 성공을 향한 열정과 집념으로 가득 차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산 헤드린을 비롯한 유다 지도층 인사들로부터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청년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이제 세상을 향한 그의 열정은 하느님과 복음 선포를 향한 열정으로 뒤바뀌었습니다.
“나는 하느님의 열정을 가지고 여러분을 위하여 열정을 다하고 있습니다.”(코린토 2 11,2)
평생에 걸친 바오로 사도의 삶의 중심부를 관통하는 삶의 키워드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열정이었습니다.
회심 이전 그는 율법을 공부하고 유다인들의 전통을 계승하는 데 있어 가장 열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율법에 반하는 삶을 산다고 여긴 그리스도교인들을 체포하는데 가장 열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바오로 사도의 열정이 이제는 주님을 사랑하는 열정, 자신에게 맡겨진 이방계 양떼를 사랑하는 열정, 복음을 향한 열정, 선교를 향한 열정으로 철철 흘러넘치게 되었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한때 그토록 기고만장하고 자신감 뿜뿜 풍기던 그였는데, 이제는 하느님을 향해서나, 이웃을 향해서나, 자기 자신을 향해서나 한없이 겸손하고 진솔하며 인간미 넘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내가 좀 어리석더라도 참아 주기를 바랍니다. 부디 참아 주십시오.”
“나는 결코 그 특출하다는 사도들보다 떨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비록 말은 서툴러도 지식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교황 교서나 주교님들 사목 서한을 읽어보았지만, 바오로 사도가 사용한 표현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내가 좀 어리석더라도 참아 주기를 바랍니다.”
“내가 비록 말은 서툴러도...”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있었던 강렬한 예수 그리스도 체험은 완고하고 뻣뻣하던 바오로를 세상 부드럽고 편안하고 자유롭게 변화시켰던 것입니다.
그는 더 이상 잘 난 체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편지를 쓰는데도 애써 거창하고 유려한 표현을 쓰기 위해 애쓰지도 않았습니다.
남들보다 더 뛰어난 체 하려고 어깨에 힘도 주지 않았습니다.
부족한 그대로의 나, 죄인인 그대로의 나를 가감 없이 표현한 것입니다.
초대 교회 공동체 안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목자, 요즘으로 치면 베드로 사도와 더불어 교황님 역할을 수행했던 바오로 사도였지만, 그는 교우들에게 조금도 신세 지지 않고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봉사하려고 여러 교회에서 보수를 받는 바람에 그들을 약탈한 꼴이 되었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 나에게 필요한 것들이 있었지만 누구이게도 폐를 끼치지 않았습니다.”
오늘 내가 하느님과 그분의 나라를 향해 지니고 있는 열정은 어느 정도인지?
오늘 나는 얼마나 겸손하고 진실하며, 인간미 넘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누군가에게 민폐 끼치지 않고 부담주지 않는 청빈한 삶을 살고 있는지?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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