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마르 12,28-34: 첫째가는 계명
오늘 복음 말씀은 모든 계명 중에서 어느 것이 첫째가는 계명인가에 대한 예수님과 제자들 그리고 그 말을 듣고 있던 어느 율법학자와의 대화이다. 율법학자의 질문에 두 가지 큰 계명을 들어 그것을 하나로 만들어 대답하신다. 먼저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신명 6,4)라는 유대교 교리의 진수와 신앙의 기초를 말씀하시면서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하신다.
그리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레위 19,18)라는 말씀을 하시며, 하느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유일한 증명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실행함에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말로서가 아니라 가난한 이웃을 겸손하게 섬김으로써 하느님의 위엄을 가장 잘 찬미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모든 율법서와 예언서가 하느님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두 계명에 달려 있다고 말씀하신다. 사랑의 계명은 너무 많고 분명해서 어떻게든 선을 행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랑을 가지고 행하지 않으면 그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1코린 13).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 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30절) “마음을 다하여”라는 표현은 조그마한 갈라짐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찮은 것에 사랑을 쏟아붓는다면 중요한 것에 대해서는 그 사랑이 그만큼 부족할 것이기 때문이다. 동정이라는 말이 바로 하느님께 대한 갈림 없는 사랑의 삶이라고 한다. 바로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자세를 말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31절) 이웃 사랑은 최고의 덕이며 하느님께서 주신 모든 계명의 근본이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이웃을 모른 체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다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고 말씀하신 바를 기억하여 자비를 보여준다. 이웃에 대한 사랑이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사랑은 함께가 아니면 완전하게 표현될 수 없다. 이웃을 떠나서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고, 하느님을 떠나서는 이웃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온 마음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유일한 확증은 바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사랑을 베풀고 그들을 끊임없이 돌보아주는 일이다.
이러한 예수님의 대답을 들은 율법학자는 그 대답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덧붙여 말한다.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 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제물보다 낫습니다.”(33절) 이러한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34절) 고 축복해주셨다. 나는 어떻게 이 계명을 살아가고 있는가?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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