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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6월 4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06-04 조회수 : 315

요한 3,16-18 
 
참사랑은 우리를 더욱 깊은 결속, 더 긴밀한 일치, 더욱 활발한 친교로 이끌어 줍니다! 
 
 
또 다시 우리 신부님들이 곤경을 치러야 하는 삼위일체 대축일이 돌아왔습니다.
삼위일체의 신비를 소개하려로 나름 이런저런 비유나 예화를 들면서 강론을 전개하지만, 강론하는 우리 사제들부터 긴기민가 합니다. 
 
자칫 잘못 강론하면 이단으로 빠진다거나, 교우들을 혼란의 도가니로 몰고 갈 수 있으니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그저 두리뭉실하게 강론하는 것이 최고입니다. 
 
존경하는 언어의 마술사 전경린 작가께서 사랑하는 대상이 있을 때 우리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묘사하면서 기가 막히게 ‘사랑’을 정의했습니다. 
 
“새로운 풍경을 볼 때 마다 내 머릿속에는 늘 그가 떠올랐습니다.
그가 없으니 내가 앉은 의자 옆으로 무의미한 시간들이 듬성듬성 흘러갑니다.
그와 헤어져 있는 동안에도 난 언제나 그를 옆구리에 끼고 살았습니다.” 
 
참으로 공감가는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따져보니 참사랑은 우리를 더욱 깊은 결속, 더 긴밀한 일치, 더욱 활발한 친교로 이끌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오늘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삼위일체의 하느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참사랑이 무엇인지를, 가장 완벽한 일치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된 친교가 어떤 것인지를 정확하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의 하느님께서는 서로 간에 오고 가는 사랑의 깊이가 얼마나 깊던지 철저하게
한 몸이 되셨습니다.
아무리 기를 써도 떼어놓을 수 없을 정도로 ‘딱’ 붙어 계십니다.
언제 어디서나 견고하고 튼튼한 사랑의 끈으로 연결되어 계십니다. 
 
결국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는 한 가지입니다.
미움의 사슬을 끊고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분열의 고리를 끊고 서로 일치하는 것입니다.
단절의 벽을 넘어 서로 활발히 소통하는 것입니다. 
 
성역(聖域)이란 말이 있습니다.
함부로 침범해서는 안 되는 ‘신성한 구역’입니다.
어떻게 보면 하느님의 영역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시대의 두드러진 경향 가운데 하나는 성역이 점점 사라져간다는 것입니다.
호기심 많은 세상은 어떻게 해서든 호기심을 해소하고자 기를 씁니다.
모든 것이 다 파헤쳐지고, 낱낱이 만천하에 드러납니다. 
 
그러나 하느님에 대해서는 예외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신학자라고 해도, 아무리 난다긴다 하는 대과학자라고 해도 아직도 명확하게 하느님에 대해서 설명하지 못합니다.
호기심을 안고, 정복욕을 지니고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점점 더 멀어지는 분이 삼위일체의 하느님이십니다. 
 
결국 그냥 우러러 보기만 해도 행복한 분이 삼위일체의 하느님이십니다.
우리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올라갈 수 없는 너무나 큰 산이기에 겸손하게 그 앞에 승복해야 될 분이
삼위일체의 하느님이십니다.
그저 겸손하게 그분 앞에 서서 찬미와 영광, 무조건적 믿음으로 사랑을 드려야 할 분이 삼위일체의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의 연구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경탄의 대상이십니다.
하느님은 호기심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믿음의 대상입니다. 
 
성경의 수많은 등장인물 가운데,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습니까?
오늘날 우리 사회 안에서 어떤 사람들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까?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의심하지 않고 굳게 믿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신비 앞에 그저 열심히 경배와 감사와 찬미를 드렸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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