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7,1-11ㄴ
감동 깊고 비장한 고별 연설
오늘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고별 연설이, 사도행전에서는 바오로 사도의 고별 연설이 각각 소개되고 있습니다.
에페소에서의 냉대와 박해 속에 겨우 목숨을 건진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로 갔습니다.
그리스에서 석 달가량 머문 뒤에 시리아로 가려 했으나, 유다인들이 바오로 사도를 해칠 계략을 짜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됩니다.
할 수 없이 바오로 사도는 마케도니아를 거쳐 돌아갑니다.
그야말로 기약 없는 고난의 행군입니다.
필리피에서 트로아스로, 트로아스에서 또다시 배를 타고 아쏘스로, 아쏘스에서 미틸레네로, 미텔레네에서 사모스 섬으로, 그다음 날에는 밀레토스로 넘어갔습니다.
오랜 여독과 박해와 매질로 온몸이 병든 바오로 사도에게 있어 참으로 혹독한 여행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반도를 횡단하는 먼 거리를 도보로 걸은 후에는 하루 쉴만한데, 바오로 사도는 그다음 날 이른 아침
또 다시 배에 오릅니다.
기도로 꼬박 밤을 지새운 후, 날이 밝으면 어김없이 행장을 꾸리곤 했습니다.
밀레토스에 도착한 바오로 사도는 64 Km나 떨어진 에페소 교회의 원로들을 초대합니다.
그리고 감동 깊기로 유명한 ‘고별 연설’을 행합니다.
이 연설은 바오로 사도가 교회 지도자들에게 하신 유일한 연설입니다.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고별 연설은 사도행전 20장 17~38절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제 이 지상에서는 더 이상 만날 기약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바오로 사도의 음성은 비장함으로 가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고통과 박해를 받게 될 남아있는 제자들과 양 떼를 생각하니 깊은 슬픔과
측은함이 밀려와 바오로 사도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립니다.
“나는 성령에 사로잡혀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나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나는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달릴 길을 다 달려 주 예수님께 받은 직무, 곧 하느님의 은총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다 마칠 수만 있다면, 내 목숨이야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내가 떠난 뒤에 사나운 이리들이 여러분 가운데로 들어가 양 떼를 해칠 것임을 나는 압니다.
그러니 내가 삼 년 동안 밤낮 쉬지 않고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눈물로 타이른 것을 명심하며 늘 깨어 있으십시오.”
“나는 누구의 은이나 금이나 옷을 탐낸 일이 없습니다.
나와 내 일행에게 필요한 것은 이 두 손으로 장만하였다는 사실을 여러분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모든 면에서 여러분에게 본을 보였습니다.”(사도행전 20장 22~35절)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았던 자신의 지난 삶에 대한 진솔한 고백, 전도 여행길에 겪었던 고초들, 남겨질 양 떼를 향한 사랑에서 우러나온 바오로 사도의 염려가 아무런 가감 없이 잘 소개되고 있는 명설교입니다.
고별 연설이 끝나자 그 자리에 함께 했던 에페소 교회 원로들은 복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합니다.
그런 모습을 본 바오로 사도는 무릎을 꿇고 그들과 함께 기도를 시작합니다.
이 지상에서는 얼굴을 볼 수 없으리라는 생각에 다들 흐느껴 울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지상에서의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누면서 바오로 사도를 배 안까지 배웅하였습니다.
“그간 정말 감사했습니다. 제 불찰을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부디 건강하십시오. 저 위에서 기쁜 얼굴로 다시 만납시다.”
고통과 시련, 그러나 기쁨과 감사로 가득한 바오로 사도의 선교 여정을 묵상하면서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모든 것이 잘 갖춰진 여건 속에서 왜 좀 더 적극적으로 선교 활동에 임하지 못하는가 하는 부끄러움이 밀려왔습니다.
지칠 줄 모르는 선교 열정으로 활활 불타올랐던 바오로 사도와 쥐꼬리만큼 일하고도 ‘피곤해 죽겠다! 힘들어 죽겠다!’가 입에 붙은 제 모습이 크게 대조되어 많이 서글펐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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