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요한14,9)
오늘 복음(요한14,7-14)은 어제 복음에 이어지는 말씀으로 '아버지께 가는 길에 대한 말씀'입니다.
'지복직관(至福直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하느님을 우리 인간의 눈으로 직접 뵈옵는 천국의 행복한 상태'입니다.
하느님께서 이천 여 년 전 우리 인간과 똑같은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고, 지금은 매일 성체와 성혈에 모습으로 우리에게 내려오십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하느님을 지복직관하는 은총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이렇게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이신 하느님'이십니다.
문제는 '누가 이 은총을 깨닫고 많이 누리느냐'입니다.
어떤 사람은 지복직관하면서 주시는 은총을 마음껏 누리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은총이 쏟아지는데도 모르고 있고, 또는 알면서도 여러 '육의 우산들'로 그 은총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교만의 우산, 분노의 우산, 탐욕의 우산, 인색의 우산, 시기와 질투의 우산, 음색의 우산, 게으름의 우산'
"나늘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요한14,9)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요한10,30)
이 말을 들은 유다인들은 돌을 집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마침내는 하느님의 이름을 모독했다는 '신성모독죄'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하느님을 죽인 것입니다.
유다인들에게 하느님은 가까이 갈 수 없는 존재이셨습니다. 그들에게 지복직관은 곧 죽음을 의미했고, 지금 여기에서는 결코 할 수 없고, 죽음 저 너머에서 누리는 행복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지복직관은 지금 여기에서부터 할 수 있는 행복이요 은총'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총'입니다. '성체와 성혈이신 예수님께서 날마다 우리에게 주시는 은총'입니다.
이 은총을 내가 스스로 가로막지 말고,
이 은총을 누리며 삽시다!
(~ 2열왕 12,17)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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