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4,1-6
어린이들에게는 세상 온천지가 호기심 천국입니다!
언젠가 홀로 피정 오신 형제님을 위해서 제 주특기인 해물 라면을 끓여드린 적이 있습니다.
김치도 내오고, 햇반까지 데워드리니, 큰 감동을 받으셨습니다.
그때 제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하느님께서도 우리에게 이렇게 하신다는 생각. 오직 딱 한 사람, 나만을 위해 손수 빵을, 그것도 영원한 생명의 빵을 마련하시는 우리의 하느님이라는 생각.
오늘은 보기만 봐도 사랑스러운 어린이날입니다.
돌아보니 저도 어린이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베이비붐 시대여서 아이들로 넘쳐났습니다.
아이들이 너무 많다 보니 학교가 다 수용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전 반 오후반으로 나눠서 수업을 할 정도였습니다.
5학년 때 제 번호가 100번일 정도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아이들이 워낙 많다 보니, 한 아이 한 아이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많이 부족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선생님들께서는 담당하던 아이들이 워낙 많다 보니 한 학년이 다 끝나갈 때까지도 반 아이들 이름을 다 외우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하느님께서는 우리 한명 한명을 극진히 사랑하시고 존중하시며, 우리와 1대 1로 만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생각하니 얼마나 감사하고 은혜로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 시대 유다 사회 안에서 어린이들은 참으로 혹독한 취급을 당했습니다.
당시 워낙 유아사망률이 높다 보니, 일단 성인이 되어야만 정상적인 한 인간 존재로 대접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 숫자를 헤아릴 때 어린이들은 제외되기 일쑤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빵을 많게 하신 기적을 행하셨을 때, 복음 사가들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빵과 물고기를 먹은 사람은 장정만도 5천명.
사람들은 어린이들을 볼 때, 동등한 인격체, 자유의지를 지닌 한 인간 존재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수님께서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라는 소식을 전해 들은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데리고 와서 축복과 안수를 청합니다.
그런 어른들의 모습에 사도들의 심기가 조금 불편해졌습니다.
안 그래도 집요하게 밀려드는 환자들로 인해, 상습 피로에 시달리던 스승님이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휴식이 필요한 스승님이셨기에, 개념도 없는 아이들의 모습에 짜증이 났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제자들 생각에, 스승님께서는 보다 위대하고 중요한 일을 행하셔야 할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개념 없는 어린이들을 축복하는 일은 아무런 가치와 의미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제자들의 생각과 180도 달랐습니다.
오히려 제자들을 크게 꾸짖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마태오 복음 19장 14절)
여기서 말씀하신 어린이들은 대여섯 살 어린이들도 해당 되겠지만, 더 폭넓게 적용됩니다.
작고 보잘것없는 이들, 단순하고 소박한 이들, 스스로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것을 잘 알기에, 모든 것을 하느님 아버지께 전적으로 맡겨드리는 이들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런 사람들, 어린이들, 작고 보잘것없는 이들을 신앙인들의 모범이요 이정표로 선언하십니다.
하늘나라는 많이 배웠다고 자부하는 바리사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자신의 능력과 공덕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께 자신의 모든 삶을 내맡기는 사람, 그분의 크신 자비에 매일 의탁하는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주어지는 선물임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진정한 어린이들에게는 세상 온천지가 호기심 천국입니다.
매사를 설레는 마음으로 흥미진진하게 바라봅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세상만사를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로 수용합니다.
나이를 점점 들어갈수록 더 노력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어린이로 태어나서, 오랜 세월 어른으로 살았으니, 이제 다시 어린이로 되돌아갈 순간입니다.
어린이들이 지닌 삶의 특징은 나약함이요 미성숙이지만, 동시에 기쁨이요 희망, 천진난만함이요 신뢰심입니다.
어린이들은 오늘 내 처지가 아무리 암담하더라도 큰 실망에 빠지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하고 감사합니다.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으며 일상 안에서의 작은 기쁨을 찾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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