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0,1-10
오늘은 착한 목자이지만, 잠깐 방심하면, 도둑이요 강도, 삯꾼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시골에 살다 보니 비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실감합니다.
오늘 하루 온종일 날씨가 잔뜩 흐리고 비가 오길래, 웬 떡이냐 하며, 이런저런 모종을 심었습니다.
전문가 농부들이 보시면 배를 잡고 웃으실 모종 작업입니다.
멀리 텃밭에 심었더니 자주 안 가게 되고, 엄청난 잡초 때문에 엄두도 안 나길래, 올봄에는 찌그러진 솥단지며, 금이 간 물통, 다 쓴 간장통 등 폐품에다 흙을 담아 모종을 심었습니다.
작업을 다 끝내고 나니, 그럴듯했습니다.
모종 작업도 만만치 않습니다.
좋은 흙을 퍼오고, 퇴비도 좀 섞고, 잘 배합한 다음, 모종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조심조심 다뤄 땅에 꽂고, 흙을 다져준 다음, 뿌리가 잘 내리도록 물을 듬뿍 주었습니다.
모종 작업을 하면서,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도 내게 이렇게 하셨겠지. 나를 소중히 여기시고, 조심조심 다루시고, 애지중지하시고,
잘 자리 잡고 성장하도록 갖은 정성을 기울이시고...크신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에 그저 백번 천번 감사드리며, 감지덕지하는 성소 주일입니다.
한 본당에 특강을 갔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자상하신 주임 신부님과 인사를 하고 악수를 나누는데, 신부님 손이 보통 손이 아니었습니다.
제 손도 거칠고 투박하기로 만만치 않은데, 그 신부님 손은 여기저기 굳은 살이 박히고 상처도 많았습니다.
“아니, 신부님께서 무슨 공사판에서 중노동 하시는 분도 아닌데, 무슨 손이 이러시냐?”고 물었더니, 신부님께서, 거의 공사판 노동자처럼 살고 계신답니다. 웬만한 건물 보수나 기계 수리는 직접 다 하시다 보니 손이 그렇게 거칠다고 하셨습니다.
한없이 부족하고 나약하지만, 우리 안에 착한 목자의 모습이 있습니다.
한 형제가 저희 피정 집을 찾아오셔서 며칠 머무시다 돌아가시면서 남기신 말씀, “세상 답답한 날들이었는데, 고속도로가 하나 뻥 뚫린 기분입니다.”
또 다른 자매님께서는 환한 얼굴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줄기 밝은 빛을 보고 갑니다.”
저를 포함한 우리 형제들, 하나같이 부족하고 나약하고, 한심하고 웃기는 존재인 줄만 알았는데,
우리를 통해서 한 줄기 빛을 발견했다니, 참으로 신기하기도 하고, 스스로 대견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자주 체험하는 바처럼 오늘은 착한 목자였지만, 잠깐 방심하면, 살짝 초심을 잃어버리면,
주님께서 보시고 슬퍼하실 도둑이요 강도, 삯꾼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래서 언제나 중요한 것이 한결같으며 지속적인 겸손의 덕입니다.
세상의 가치관, 육의 세계에서 끊임없이 영적 생활, 주님 계명에 따른 생활로 넘어가려는 노력입니다.
오늘 성소 주일인 동시에 착한 목자를 기억하는 주일입니다.
사제나 수도자들의 성화와 성소 증진을 위해 기도하는 날입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이 땅의 모든 사제, 수도자들이 착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겸손하고 착한 목자로 살아가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또 한 가지 염두에 둬야 할 측면이 있습니다.
세상 속에 살아가는 모든 평신도들 역시 보편 사제직을 부여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자신이 몸담고 있는 가정과 직장, 단체와 사회 안에서 주님을 꼭 빼닮은 너그럽고 착한 목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야겠습니다.
오늘 성소 주일을 맞아 사제와 수도자, 지도자들에게만 착한 목자로서의 삶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각자 주어진 환경과 처지에서 착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적극적으로 추구해야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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