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주님 만찬 미사’로 ‘파스카 성삼일’을 시작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잡히시던 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하시면서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당신의 몸과 피를 하느님 아버지께 봉헌하셨다. 이 만찬에서 예수님께서는 몸소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며 그들에 대한 크나큰 사랑을 드러내셨다. 제자들과 그 후계자들은 예수님의 당부에 따라 이 만찬을 미사로 재현한다. 탈출기에서는 야훼 하느님을 공경하기 위한 파스카, 즉 죽음의 재앙이 건너간다는 과월의 축제로, 이를 영원한 법으로 삼아 대축일로 지내라고 하신다. 사도 바울로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주님께서 최후 만찬 때에 행하신 ‘성체 성혈의 의미와 그 의식을 우리가 행하여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누룩이 들어있지 않은 밀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축성되는 이 신비를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다.
복음: 요한 13,1-15: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
예수님은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1절) 예수님께서 ‘건너가심’은 세상에 계실 때, 하느님의 고귀함을 벗고 겸손한 모습을 취하셨으며, 우리에게 맞추어 당신을 낮추신 하느님의 말씀이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신다는 말씀이다. 즉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필리 2,7) 우리와 함께 계시던 분이 당신의 충만함(참조: 콜로 1,19; 에페 1,23)으로 돌아가신다는 의미이다. 제자들을 곧 떠나야 할 때가 오자 예수님은 그들에게 더욱 큰 사랑을 보여주신다. 그분은 그 일로 그들의 사랑이 더욱 커지고 거기에서 위로를 받아 그들이 장차 닥칠 끔찍한 일들에 잘 대처할 수 있도록 하신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1절) 여기서 ‘끝까지’는 ‘그리스도다움’을 뜻한다. 그분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당신의 제자들을 사랑하셨다.
이 사랑은 만찬 때, 악마가 이미 유다의 마음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생각을 불어넣은 후에 표현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당신 손에 내주셨다는 것을, 또 당신이 하느님에게서 나왔다가 하느님께 돌아간다는 것을 아시고(3절) 식탁에서 일어나시어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들어 허리에 두르셨다(4절). 그리고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허리에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 시작하셨다.”(5절) 고 한다. 말씀이신 분, 모든 것을 쥐고 계시는 분으로 아버지께로 돌아가시는 분이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시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않으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려고 무릎을 굽히셨다. 예수님의 이 모든 일은 그분의 겸손을 드러내고 있다.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손수 부으셨다. 어떤 좋은 일을 할 때는 겉으로만 보이는 행동만 할 것이 아니라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르셨을 때, 베드로는 예수님의 그 행위를 받아들이기가 너무나 황송했다. 그래서 당황해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는 일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깨닫게 될 것이다.”(7절) 베드로는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8절) 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8절) 베드로가 나중에 알게 되는 신비는 그들의 발은 곧 기쁜 소식을 전할 발이므로 그 발을 씻고 당신 허리에 둘렀던 수건으로 닦음으로써 아름답게 만드신 것이다. 이제 그들은 “나는 길이요”(요한 14,6)라고 하신 분께로 갈 수 있게 되었고, 또 기쁜 소식을 선포하고 깨끗한 발로 사람들에게 갈 수 있도록 아름답게, 제자들을 정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신비를 아직은 깨닫지 못하지만, 나중에 그것을 알고 나면 그 신비를 깨닫고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베드로는 그 말씀을 듣고 “주님, 제 발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십시오.”(9절) 하자 예수께서는 “목욕을 한 이는 온몸이 깨끗하니 발만 씻으면 된다. 너희는 깨끗하다. 그러나 다 그렇지는 않다.”(10절)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유다의 발도 씻어 주셨다. 예수님은 그를 다른 제자들처럼 영예롭게 대하시며 그에 대해서도 특별한 사랑을 보여주셨다. 그러나 유다는 발을 씻어 주시는 그 사랑을 십자가의 못으로 갚아드리고 만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나서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깨닫겠느냐?”(12절) 하신다. 그리고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14절) 예수님은 스승으로서 제자들의 발을, 주인으로서 종들의 발을 씻어 주셨다.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 주면서 동시에 나 자신의 더러움도 씻는 것이다. 형제의 발 앞에 몸을 숙일 때, 겸손해지며 더욱 확고해진다. 이 겸손으로 교만해지려는 마음이 완전히 없어질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준 것이다.”(15절) 예수께서 먼저 당신의 모습이 사랑하고 봉사하는 모습이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닮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위한 봉사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자세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가 하느님께 가까이 간다고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이웃으로부터 멀리할 때가 아니라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더 가까이할 때이다.
이제 성체성사를 세우신 이 거룩한 밤에 이 제대에서부터 시작하여 천상식탁에 앉을 때까지 당신의 말씀과 생명으로 우리 모두를 지켜주시고 이끌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이 미사를 봉헌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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