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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2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04-02 조회수 : 294

어린 나귀!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타시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동물입니다! 

 

지금 우리는 교회 전례력 안에서 가장 정점이자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성주간을 시작합니다.

교회는 이 성주간 동안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잘 묘사하고 있는 예수 수난 복음을 깊이 묵상하도록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성주간의 첫째날인 오늘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예수님께서는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면서, 당신 지상 생애 가운데 가장 의미있고 중요한 한 주간을 시작하십니다. 

 

예루살렘 안으로 들어오신 예수님께서는 월요일에 속화된 성전을 말끔히 정화하십니다.

화요일에는 군중을 향하여 성전 파괴라든지, 재림 때의 징조라든지, 여러 중요한 비유의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수요일에는 하루 휴식을 취하시고, 드디어 성 목요일,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거행하십니다.

만찬 중에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고, 만찬이 끝난 다음 겟세마니 동산으로 가셔서 기도하십니다. 

 

이윽고 체포되신 예수님께서는 성금요일 혹독한 고통과 죽음의 날을 맞이하십니다.

부당한 재판을 받으시고, 이리저리 끌려 다니시다가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마침내 오후 3시경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십니다. 

 

성 토요일에는 무덤에 계시다가, 주일에 영광스럽게 부활하십니다. 

 

성지(聖枝) 주일,

예수님의 첫 행적은 올리브산 동쪽에 위치한 벳파게에서 시작하십니다.

벳파게는 히브리어로 번역하면 ‘무화과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벳파게를 떠나 올리브 산 정상으로 올라가십니다. 

 

올리브산은 예루살렘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장소입니다.

해발 810미터 높이의 올리브산 정상은 예루살렘 성전보다 110미터 가량 더 높기 때문에 다들 정상에 올라서면 감탄사를 연발합니다. 

 

더구나 많은 성지순례객들이 예리코에서 유다 광야를 거쳐 마지막 여정으로 올리브 산을 넘게 됩니다.

긴 여행에 지친 순례객들이 올리브 산 정상에 도달하면, 참으로 특별한 체험을 하게 되지요. 

 

서쪽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과 함께, 꿈에 그리던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의 전경이 한 눈에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그런 기쁨을 만끽할 여유가 조금도 없습니다.

견고하게 쌓아올려진 예루살렘 성이지만 조만간 돌 하나 남지 않을 파멸이 닥쳐올 것을 내다보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번 주간에 당신에게 벌어질 참혹한 일들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윽고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입성 때 타고 들어가실 동물을 선택하시는데, 좀 웃깁니다. 

 

이제 마지막인데, 이왕이면 좀 있어 보이게, 코끼리 정도 타고 들어가시면 참 좋았을텐데. 코끼리가 아니라면 키큰 낙타나 멋진 백마 정도도 괜찮았을텐데. 

 

예수님께서 최종적으로 선택하신 동물은 어린 나귀였습니다.

말과에 속하지만 말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하고 왜소합니다.

생긴 것도 좀 웃기고 생뚱맞습니다. 

 

어린 나귀!

창조주 하느님의 외아들이요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타시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동물입니다.

수난과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도 특유의 유머 감각을 마음껏 발휘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코믹한 모습!

여기에는 큰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존경과 환영의 표시로 나뭇가지를 길에 깔고,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길에 까는 군중들, 그들의 마음과 예수님의 마음은 큰 차이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향해 크게 환영하고 박수를 치던 예루살렘 군중은 마음 속으로는 다들 세속적인 기대감을 품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강력한 통치자가 되셔서, 이스라엘에게 정치적인 해방과 경제적 번영을 안겨줄 것을 기대하며 환호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지금 그들이 외치는 ‘호산나’가 조만간 저주와 악담, 고발과 십자가 처형으로 뒤바뀔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위대한 승리자나 정복자가 타는 건장한 말이 아니라, 작고 왜소한 어린 나귀를 타신 것입니다.

탄생 때 부터 시작해서 죽음의 순간까지 시종일관 계속된 예수님의 겸손, 아래로의 행보가 돋보이는 주님 수난 성지 주일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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