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제키엘 37,21ㄴ-28
요한 11,45-56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제이신 동시에 희생물이시고, 하느님이신 동시에 성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도 피하고 싶으셨던 순간, 아버지께서 정하신 끔찍한 순간이 목전에 다가왔습니다.
그 순간이 다가옴을 예견이라도 하는 듯이 예수님은 공공연한 표적이 되십니다.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기적과 표징을 바라본 몇몇 사람이 대사제에게 일렀습니다.
다시 말해서 고자질한 것입니다.
당혹스러웠던 대사제는 임시 최고 의회를 소집하여 대책 마련에 고심을 하기 시작합니다.
유다인들은 고위급 사제들과 바리사이계 율법학자들과 원로들 가운데 70명을 뽑아 유다 최고 의회를 구성했습니다.
대사제는 당연직 의장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의회에 참석했던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을 한번 보십시오.
그들의 걱정은 오직 한가지입니다.
“저자를 그대로 내버려 두면 모두 그를 믿을 것이고...”
그들은 예수님으로 인해 위축될 자신들의 입지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대로 두면 로마 당국이 소요 사태를 우려한 나머지 로마 군대가 출병할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었습니다.
기원후 18~36년 사이 대사제를 역임했던 가야파는 아주 특별한 발언을 합니다.
최고 의회 의원들의 걱정을 고려한 정치적 발언이었습니다.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그는 자기도 모르게 예수님의 앞날에 대해 정확한 예언을 하게 됩니다.
바꾸어 말하면 예수님을 죄인으로 몰고 가느냐, 무죄를 선고하느냐 보다도 유다 전체를 위해 예수님을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말입니다.
“다른 대 사제들은 날마다 먼저 자기들의 죄를 용서받으려고 희생 제물을 드리고 그 다음으로 백성들을 위해서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그분은 날마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그분은 당신 자신을 속죄 제물로 바치심으로써 이 일을 한 번에 다 이루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7장 27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나머지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셔서 하느님 앞에 향기로운 예물과 희생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사제이신 동시에 희생물이시고, 하느님이신 동시에 성전이십니다.
한편 유다인들의 태도를 보십시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가 축제를 지내러 오지 않겠소?”
그들은 철저하게도 방관자로서 ‘예수님 사태’를 즐기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대단한 호기심거리일 뿐입니다.
마치 내기라도 걸 태도입니다.
인류 최대의 선물이자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을 참으로 야박하고 대하는 인간들이 모습이
표독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감사와 보답과 찬미는커녕 무시하고, 시험하고, 놀려대는 사람들입니다.
극진히 정성껏 모시기는커녕 문전박대하고, 그를 향해 돌을 들고, 결국 죽음으로 몰고 가는 무서운 사람들입니다.
그 모든 모욕적인 언사와 배은망덕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그 길을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걸어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더 큰 사랑의 실천을 위해, 더 큰 가치의 획득을 위해, 사사로운 모든 것을 내려놓으시는 예수님의 큰 걸음이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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