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마태 1,16.18-21.24ㄱ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4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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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생 때로 기억됩니다. 당시에 선 묵상이라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특히 수도자들이 이 묵상을 위해 절에 가서 선 묵상을 했습니다. 불교의 참선을 통해 마음을 정화시켜 하느님께 향한다는 것입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더 깊이 하느님을 체험한 것이 아니라, 아예 개종하는 수도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교가 잘못되었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그리스도교의 소중한 가치를 간직하지 못했기에 개종한 것입니다.
종종 개신교에서 하는 프로그램에 참석하고 있다는 분을 만납니다. 가톨릭 안에는 그런 프로그램이 없어서 영적 갈증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톨릭 안에 그런 프로그램이 없다는 말은 거짓입니다. 2,000년 역사를 가지고 있는 가톨릭 안에 그런 프로그램이 왜 없겠습니까? 그보다 쉽게 영적 갈증을 채우려는 욕심으로 다른 종파의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구약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금송아지를 섬기는 모습이 나옵니다. 분명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금송아지를 만들고, 이 금송아지가 자기들을 구원으로 이끈 하느님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역시 하느님을 쉽게 만나고 싶은 욕심 때문입니다.
성경을 통해 우리는 충분히 진리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미사와 묵상 그리고 각종 피정 프로그램을 통해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다른 것이 마치 하느님이고, 하느님의 뜻인 양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너무 쉽게 하느님을 만나려는 욕심 때문입니다.
좀 더 우리의 것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것에 집중할수록 일상 안에서도 쉽게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라는 말처럼, 남의 것을 통해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는 착각 속에 머무는 어리석음에서 탈출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이신 성 요셉 대축일을 지냅니다. 요셉 성인께서는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예수님을 기르는 일에 헌신하셨습니다. 복음에서는 요셉 성인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
법대로 사는 사람, 철저히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법대로 살기가 더 쉽습니다. 원칙대로만 살면 되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하느님 뜻대로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요셉 성인이 대단한 것은 쉬운 길을 버리고, 어렵고 받아들이기 힘든 길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것인 ‘사랑’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꿈에 나타난 천사의 말을 따를 수가 있었고, 끝까지 가정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세상의 뜻을 따르는 길은 쉬운 길입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의미 있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은 주님의 뜻을 따르는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