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느님의 강렬한 빛과 은총으로 인해
성화(聖化)되고 의화(義化)됩니다!
외적으로 드러난 것으로만 판단할 때, 오늘 비유에 등장하는 바리사이의 모습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기도를 통해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잘 소개했습니다.
그는 강도짓이나 불의나 간음과는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그는 일주일에 두번 단식했고 소득의 실일조를 꼬박꼬박 바쳤습니다.
세상에 이런 훌륭한 신앙인이 어디 있겠습니까?
바리사이의 탁월한 신앙생활은 절대로 과소평가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가운데 그 정도로 철저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내린 결론은 꽤나 의외의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에 있어서 귀감이 되는 대단한 신앙인 바리사이를 칭찬하거나 격려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이런 특별한 선언을 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 복음 18장 14절)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 비유를 통해 우리는 다시 한번 외적으로 드러난 것보다도 마음을 중요시 여기시는 주님, 교만한 인간의 우월감과 자만심을 여지없이 깨트리시는 통쾌한 주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리사이가 지니고 있었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다 좋았지만 딱 한가지 치명적인 결함, 주님께서 가장 혐오하시는 결점을 지니고 있었으니, 그의 과도한 허영심과 교만함이었습니다.
바리사이가 지니고 있었던 과도한 선민의식, 우월의식, 자만심은 공들여 따놓은 점수를 다 잃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주님으로부터 선택받았으며 총애를 받는 맏아들이라는 자의식이 지나쳤습니다.
신앙생활 안에서 정말 기본적이고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가 물었을 때, 그것은 다름 아닌 겸손의 덕입니다.
그 겸손의 덕은 성전 안으로 들어갔던 또 다른 인물인 세리를 통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세리는 자신이 얼마나 주님 앞에 비참하고 나약한 존재인지를 잘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비록 부끄러운 삶을 살아가지만 언젠가 주님 자비에 힘입어 회개의 삶으로 나아가겠다는 간절한 바람을 안고 있었습니다.
한없이 부족한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백성의 일원으로서 성전으로 가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주님으로부터 자비를 구하는 것 외에 다른 어떤 탈출구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 인간 존재는 하느님의 강렬한 빛과 은총으로 인해 성화(聖化)되고 의화(義化)됩니다.
근본적인 속성상 우리 인간은 스스로 성화되거나 의화되기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오직 유일하게 거룩하신 분 하느님에 의해서 성화와 의화가 가능합니다.
오늘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 비유 말씀은 좁은 의미의 특별한 성소(聖召)를 살아가고 있는
봉헌생활자들에게는 아주 강력한 경고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자칭 하느님과 가까이 살아가는 사람들, 성전 안에 몸담고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거듭 성찰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즉시 타성에 빠지기 쉽습니다.
거룩한 소명의식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나태한 직업인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거룩해보이나 내실이 부족한 속빈 강정같은 존재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무엇보다도 큰 어려움은 영적으로 극단적 결핍 상태 속에 살아갈 때조차도 외적으로는 거룩함을 가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외면이 아니라 내면, 형식이 아니라 내용을 중요시 여기시는 하느님 앞에 솔직한 우리의
내면 상태를 열어드려야겠습니다.
텅 비어버린 공허한 내면을 어떻게 채워나갈 수 있겠는지 주님께 도움을 청해야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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