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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14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03-14 조회수 : 352

복음 마태 18,21-35


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23 그러므로 하늘 나라는 자기 종들과 셈을 하려는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24 임금이 셈을 하기 시작하자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 하나가 끌려왔다. 25 그런데 그가 빚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아내와 자식과 그 밖에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26 그러자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제발 참아 주십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7 그 종의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다.

28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났다. 그러자 그를 붙들어 멱살을 잡고 ‘빚진 것을 갚아라.’ 하고 말하였다. 29 그의 동료는 엎드려서, ‘제발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하고 청하였다. 30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서 그 동료가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31 동료들이 그렇게 벌어진 일을 보고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죄다 일렀다.

32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들여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33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34 그러고 나서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하였다.

35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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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결혼식 주례를 위해 예식장에서 겪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신랑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으로 결혼식 주례를 서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결혼식의 주인공인 신랑 신부도 잘 모르고 또 하객들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저와 신랑 아버지의 친분만 있을 뿐이었지요. 신랑 아버지는 어떻게든 저를 챙겨주려고 하셨지만, 오시는 손님을 맞이하셔야 하니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드린 뒤에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서 예식장 주변을 돌면서 묵주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예식 시간에 맞춰서 들어가 주례를 선 뒤에 곧바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래도 아쉽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당연히 이 결혼식의 주인공은 제가 아니라, 신랑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단지 결혼식을 빛내기 위해 잠시 들린 엑스트라 중 한 명일 뿐입니다.


만약 주인공인 신랑 신부에게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고, 저한테만 모든 관심이 쏠렸다면 어떠했을까요? 이 결혼식은 엉망이 되고 맙니다. 주인공은 항상 특별 대우를 받아야 합니다.


어느 어르신과 대화를 나누다가 자신이 왕년에 얼마나 대단하셨는지를 이야기해 주십니다.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음을 말씀해주셨습니다. 한때 이런 분을 만나면, ‘꼰대처럼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열심히 사셨다는 것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주인공은 특별 대우를 받아야 하고,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열심히 사신 분을 무시하는 것은 큰 실례입니다.


이렇게 따져보면 그 누구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됨을 깨닫습니다. 스스로 다른 이로부터 관심받고 싶고 존중받고 싶은 것처럼, 세상의 모든 사람은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늘 사람 편에 서셨고, 그들에게 당신 사랑을 가득 전해주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라고 묻습니다. 성경에서 ‘7’이라는 숫자는 완전수를 의미합니다. 즉, 일곱 번 용서하면 완전한 용서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더 큰 용서를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라는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일흔일곱 번까지 용서하면 그 뒤에는 용서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용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사는 사람을 존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 삶의 주인공인 ‘나’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다른 삶의 주인공을 소홀히 합니다. 주인공인 ‘나’를 불편하게 했다면서, 다른 삶의 주인공을 판단하고 단죄하기를 당연한 것처럼 합니다.


우리는 모두 특별 대우를 받아야 하고, 함부로 대해서도 안 됩니다. 그것이 바로 ‘용서’라는 덕목으로 분명해집니다. 우리 모두 특별하기에 용서해야 합니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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