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33 “다른 비유를 들어 보아라. 어떤 밭 임자가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34 포도 철이 가까워지자 그는 자기 몫의 소출을 받아 오라고 소작인들에게 종들을 보냈다. 35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들을 붙잡아 하나는 매질하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였다. 36 주인이 다시 처음보다 더 많은 종을 보냈지만, 소작인들은 그들에게도 같은 짓을 하였다. 37 주인은 마침내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38 그러나 소작인들은 아들을 보자,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39 그를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렸다. 40 그러니 포도밭 주인이 와서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41 “그렇게 악한 자들은 가차 없이 없애 버리고,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 하고 그들이 대답하자, 4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에서 이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45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이 비유들을 듣고서 자기들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을 알아차리고, 46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군중이 예수님을 예언자로 여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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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 전, 이탈리아 성지 순례를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때 특별히 한 성인이 인상 깊었습니다. 바로 베네딕토 성인이었습니다. 수도생활을 하셨던 수비아코, 서방교회 수도원의 발생지라고도 말하는 성인께서 직접 건립한 몬테카시노 등을 순례하면서 베데딕토 영성에 큰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순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베네딕토 규칙서’ 책을 샀습니다. 혹시 잘 모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규칙서의 주석서를 구매했지요. 그만큼 성인의 영성을 알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책이라도 끝까지 다 읽는 저입니다. 그러나 이 규칙서의 머리말을 읽다가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내용이 너무 어려웠고 그만큼 지루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작년 말에 사제 피정을 신청하라는 인천교구 공문을 받았습니다. 여러 피정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중에 ‘베네딕토 영성과 가르침’이 보이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피정 지도 신부님은 제가 구매한 책의 저자였습니다. 이 피정을 신청하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
피정 강의를 통해 베네딕토 성인의 영성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규칙서에 대한 지도 신부님의 설명을 통해 성인께서 얼마나 대단한 분이었는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쉬는 시간에 신부님께 왜 ‘베네딕토 규칙서’를 읽기 힘들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책은 베네딕토 성인을 잘 아는 사람을 위한 해설서입니다. 따라서 잘 모르는 상태에서는 어려운 것이 너무나 당연합니다.”
피정을 마치고서 이 책을 다시 펼쳤습니다. 성인의 기본 영성을 알고 난 뒤에 이 책을 이해하기는 훨씬 편했습니다. 책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저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를 전해주십니다. 밭 임자가 맡긴 소작인들은 포도원이 자기 것인 양 행동합니다. 그래서 소출을 받으러 온 종들을 오히려 매질하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아들까지 보내지만, 소작인들은 아들까지 죽여 버립니다. 그들은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소작인들이 해야 할 포도밭을 직접 일구고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우는 등의 일을 직접 한 주인의 자비와 사랑은 잊어버리고, 마치 자기 것인 양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악한 자들을 가차 없이 없애 버리고, 제때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줍니다.
알고 모르고는 이렇게 큰 차이가 있습니다. 주님에 대해서도 알려는 시도와 또 알아가면서 그 사랑을 더 크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노력을 과연 계속해서 하고 있을까요? 혹시 주님의 사랑을 몰라서 계속해서 불의한 소작인들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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