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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18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2-11-18 조회수 : 597
11월18일 [연중 제33주간 금요일] 
 
루카 19,45-48 
 
힘들이지 않고 기도 오래 할 수 있으려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물건을 파는 이들을 쫓아내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루카 19,46) 
 
성전은 분명 ‘기도하는 집’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입니다.
오늘은 어떻게 우리 내적 성전에서 기도가 충만해질 수 있는지 생각해봅니다.  
 
어떤 분들은 사는 게 기도이니 특별히 기도 시간을 낼 필요는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틀렸습니다.
아무리 기도하려고 해도 내 안에 세속-육신-마귀의 욕구가 있다면 성전이 강도들의 소굴이 됩니다.
예수님도 이런 욕구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새벽에 기도하는 습관이 있으셨습니다.  
 
먼저 내가 기도의 집이 되려면 우선 기도를 오래 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쇠붙이가 자석에 오래 붙어 있어야 자기에게도 자성이 생깁니다. 쇠를 풀무 불에 잠깐 넣었다 빼면 속까지 뜨거워지지는 않습니다.
기도가 오래가 결국 모든 삶이 기도가 되면 그제야 삶이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주님의 기도로 한 시간을 합니다. 
그래도 어떤 때는 시간이 모자랍니다.
그런데 이전의 기도를 생각해보니 내가 하느님의 뜻을 묻는 기도가 아닌 내 뜻을 하느님이 아시게
하는 기도였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들을 청하면 기도가 길어질 수 없습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졌는데 어떤 신자분이 저를 붙잡았습니다. 
굉장히 외로운 삶을 사시는 할머니셨습니다.
저와 면담하자며 한 시간을 기다리셨습니다. 
성당 직원분은 신부님 식사 시간이 다 되어
면담할 시간은 안 될 것이라 말씀드린 것 같습니다. 
 
꾸리아 강복을 주고 점심에 맞춰 올라오는데 그 자매님이 저를 잡았습니다.
면담하고 싶은데 점심을 드셔야 해서 안 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보아하니 특별한 내용은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을 해 보시라고 하였습니다. 
 
할머니는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시간으로 치자면 10분도 안 되었습니다.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잘 들어주기만 하면 오래 당신 말씀을 하지 못하실 것을. 고해성사에 들어오셔서 일사 후퇴서부터 말씀을 시작하셔도 가만히 듣고 있으면 오래 하지 못하십니다.
우리 인생에 대해, 우리가 원하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면 이렇게 금방 지칩니다.  
 
금쪽같은 내 새끼 여섯 아이를 키우는 부모와 자녀 간의 회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머니가 말하고자 하는 것, 거짓말 안 하기, 음식물 방으로 가져가지 않기, 형제간의 서열 지키기 등 몇 마디 하니 회의가 끝났습니다. 
 
하지만 금쪽 처방받고는 오래 회의가 지속되었습니다. 
부모가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들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들이 말하는 것을 들어줄 수 있을지 눈치를 보며 아주 천천히 말합니다.
이 어색한 분위기를 깨는 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마음을 받아들이자 오랜 대화가 시작됩니다. 부모와 자녀 간에, 그리고 형제들 간에도.  
 
기도를 오래 하려면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집중하면 됩니다.
마치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푸는 수학자처럼 하는 것입니다. 내 뜻은 이미 다 아시고 계신다고 가정하고 주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그 한마디를 청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도가 아무리 길어져도 지치지 않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실패요 동시에 성공으로 손꼽히는 어니스트 섀클턴이 지휘했던
남극탐험대의 이야기입니다. 
1914년 8월 섀클턴은 27명의 대원과 함께 남극 횡단에 나섭니다.
인듀어런스호 호는 웨들해의 해류에 밀려 바다 위를 떠도는 얼음 섬에 부딪혀 표류하게 됩니다.
겨울은 점점 다가왔고 이는 곧 죽음이 다가옴을 의미했습니다.  
 
1916년 4월 20일 섀클턴이 대원들을 모아 놓고 발표합니다. 
그의 지휘 아래 몇몇 대원들이 제임스 커드 호(작은 구명보트)를 타고 사우스조지아섬에 있는 포경기지로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와일드는 섀클턴 일행이 떠난 후 22명의 대원을 지휘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언젠가 섀클턴이 꼭 돌아온다는 희망을 잃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섀클턴이 떠난 지 4개월이 지난 1916년 8월 30일, 누군가 소리쳤습니다.
“배가 왔어요!” 
 
갑판에는 섀클턴이 망원경으로 얼음 섬에 있는 생존자의 숫자를 세고 있었습니다.
대원들은 숨을 멈추고 섀클턴이 다가오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이윽고 서로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는 거리가 되자 그들은 일제히 한목소리로 외쳤습니다.
“모두 무사합니다!” 
 
조난한 뒤 무려 634일 만에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전 대원이 구조되었습니다.
이는 실로 기적과 같은 결과였습니다.
이들이 무사히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분명히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상대의 희망에 내 희망을 걸 때 오래 참을 수 있습니다.
기도는 그래서 깊어질수록 말하는 것에서 듣는 것으로 넘어갑니다.
그래서 오래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울은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 급해서 자신이 먼저 제사를 지내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왕위에서 쫓아내십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까지 끝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기다리는 동안 내가 그분의 말씀을 들을 사람이 되도록 나의 뜻을 봉헌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뜻은 ‘주님의 기도’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내가 주님의 구체적인 뜻을 알아듣지 못해도 주님의 기도만 바쳐도 굉장히 유익합니다.
내가 이야기하면 금방 끝납니다. 
하지만 상대의 이야기에 관심을 두고 한마디라도 들으려고 하면 밤을 새워도 모자랍니다.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한마디는 섀클턴을 기다리던 선원들이 기다리던 나를 살리는 한마디여야 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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