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가톨릭대학교에는 특별한 장소가 있습니다. 신학교 정원 뒤편으로 언덕길을 따라 영성관으로 올라가다 보면 오른편에 ‘임마누엘 경당’이 있습니다.
임마누엘 경당은 10년 전 세월호 참사 당시 목숨을 잃은 박성호 임마누엘 예비신학생의 이름을 따서 지은 자그마한 목조 경당입니다. 10년 전, 박성호 군과 희생된 다른 이들을 기리기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합동분향소 앞에 세웠던 경당을 2018년 합동분향소가 철거되면서 우리 신학교로 옮겨왔지요. 그런데 이 일을 두고 몇몇 신자들은 언짢은 마음을 가지셨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이 일로 인해 신학교를 두고 ‘좌파 신부들을 만들어내는 곳’이라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현하신 분도 있었습니다. 세월호 희생자를 기억하는 것이 왜 정치적 사안인지 저는 아직도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러한 분들의 의견대로 교회는 사회의 일에 관여하지 말고, 신부님과 수녀님들은 그저 성당에서 기도나 열심히 해야 할까요?
이 물음은 교회의 정체성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는 국가의 한 부분으로서 사회 전체의 복음화를 위해 노력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고, 사회가 복음정신에 위배되는 방향으로 흐를 때 잠자코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회의 일에 관심을 갖고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불의와 부패, 인권 침해에 대해 경종을 울려왔고, 교도권은 다수의 회칙과 문헌을 통해 사회 안에 복음적 가치가 실현되도록 사회인들과 권력을 가진 지도층에게 권고해 왔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사회문제에 대해 신자들에게 주는 가르침이 ‘가톨릭 사회교리’이고, 사회교리는 신자들이 취사선택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믿을 교리와 마찬가지로 마땅히 알고 실천해야 할 ‘교리’입니다. 사회교리의 핵심은 크게 ‘인간 존엄성, 공동선, 보조성, 연대성’의 네 가지 단어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어려운 개념들을 통해 교회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이 그토록 강조하셨던 ‘하느님 나라가 이 세상에서 실현되도록 서로 돕고 존중하며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가자는 것’입니다. 인권이 유린당하고 불의가 만연할 때, 힘없고 가난한 이들이 억압받을 때, 한마디로 하느님 나라에 반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흐를 때 교회가 침묵한다면, 교회는 본연의 사명에 충실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지요.
지난 4월 12일 안산 화랑유원지에서는 수원교구가 주최하는 ‘세월호 참사 10주기 추모 미사’가 있었습니다. 저도 교수 신부님들, 신학생들과 함께 미사에 참석했는데, 가 보니 생각보다 많은 분이 오셨더군요. 어이없이 희생된 우리의 아이들을 기억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함께 기도하고 깨어있자고 다짐하는 것, 이것은 정치적인 행위가 아니라 가장 작고 힘없는 이들 가운데 계시는 예수님을 섬기는 일입니다.
신학교 영성관으로 오르는 산책로 오른편에 아담하게 자리잡은 임마누엘 경당이 어느덧 신학교의 한 부분이 되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오늘따라 참 아름다워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