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A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소위 일류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경제력도 있는, 세상의 시각으로는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던 후배에게 인생의 가장 큰 시련이 닥쳤습니다. 완벽주의적인 성격 탓이었는지, 아니면 주변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강박 탓이었는지, 그에겐 도벽이라는 정신 장애가 있었고, 물건을 훔치던 현장에서 적발되었는데 알고 보니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후배는 수사와 재판을 겪으면서 너무나 고통스러워했고, 그 과정에서 변호인으로 함께 한 저 역시 충격적이고 괴롭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수사와 재판 과정으로 고통스러워하던 어느 날, 그에게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유아세례를 받았지만, 오히려 무신론자처럼 살아왔던 후배였는데, 고통 속에서 하느님을 찾고 전적으로 의지하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매일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미사에도 열심히 참례하였고, 비단 이번 사건만이 아니라 과거 자신의 교만했던 모습까지 진심으로 회개했습니다.
특히, 후배 A가 주님 승천 대축일에 독서와 복음 말씀을 묵상한 후 저에게 했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형, 예전엔 인식하지 못했는데, 제자들은 예수님과 두 번의 이별을 한 거네요. 십자가의 죽음으로 첫 번째 이별할 때는 제자들이 고통과 두려움 속에 있었지만, 주님의 승천으로 두 번째 이별할 때는 그 고통과 두려움이 사라지고 기쁨과 희망 속에 있게 되었어요. 결국 주님 승천은 고통의 끝이 기쁨과 희망의 시작이라는 말씀인 것 같아요. 저도 지금은 많이 고통스럽지만, 진심으로 반성하고 회개하면 법원에서도 선처를 받고,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 용서하실 거라는 희망이 생겨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어요.”
다행히도 그 후배는 원하던 재판 판결을 받은 후 지금까지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주님 승천’이라고 하면 ‘역설(paradox)’이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승천하신 예수님은 ‘역설적’으로 현세의 우리에게서 떠나심으로써 이제 시공간을 초월해 어느 곳에서나, 누구에게나 더 가까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 승천 대축일이 되니 후배 A 생각이 납니다. 무늬만 신앙인이었던 그는 역설적에게도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기를 통해 진정한 기쁨의 신앙인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는 정말 주님의 부활과 승천을 제대로 체험한 것 같습니다. 후배가 가진 세속적인 배경이 아니라 그가 체험한 신앙과 변화가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