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제 마음에 고이 간직한, 교우들을 통해 ‘사랑’을 배운 소중한 기억을 꺼내 봅니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새벽 미사를 봉헌한 후 신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평소 형제님과 함께 새벽 미사에 꾸준히 참례하는 한 자매님이 그날따라 다른 분들의 눈에 띄지 않게 성전에서 제일 늦게 나오시더니 저에게 조용히 ‘쇼핑백’을 건넸습니다. 보통 교우들이 무언가를 건넬 때는 ‘성물 축복’을 부탁하는 경우가 많아서, 저는 으레 그 쇼핑백에 ‘성물’이 들어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열어봤습니다. 하지만 제 예상과는 다르게 쇼핑백에는 ‘돈다발’이 들어있었습니다. 정확히 ‘천 원짜리 돈다발’이 꽤 많이 있었죠. ‘성물’이 아닌 ‘돈다발’을 보고 놀란 저는 “자매님, 이게 뭔가요?”라고 여쭤봤고, 자매님은 “부끄럽지만 저희 마음이에요.”라며, ‘그 마음’이 어떠한지 얘기했습니다.
“신부님, 이건 저희가 2년간 모은 천 원짜리 지폐예요. 저희는 식당을 운영하는데, 저는 음식을 만들고 남편은 배달을 나가야 해서 본당에서 봉사활동을 하거나, 남을 도와주고 싶어도 시간이 잘 안 나요. 대신, 손님들이 현금으로 계산하면 천 원짜리는 한 곳에 따로 모아놨어요. 얼마 안 되는 액수라서 부끄럽지만, 조용히 성당에 봉헌하고 싶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포도나무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두고 ‘포도나무’ 혹은 ‘포도밭’에 비유하며 하느님과 사람의 관계를 얘기했고, 하느님은 사람에게 끊임없이 사랑을 주시는 분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요한 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자신’을 포도나무로 비유하십니다. 하느님은 ‘사람에게 끊임없이 사랑을 주시는 분’이심을 넘어, ‘사람과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고 싶어 하심’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시죠.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여기서 ‘머무른다.’라는 말에는, ‘지속적인 인내와 봉사’로 다른 존재와 함께 있는 것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머무른다.’라는 표현에서, ‘인내하는 모습’, 서로를 향한 사랑이 상대방에게 ‘남아있고 지속되는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며, ‘포도나무인 예수님 안에 머무른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요? 문득, ‘교회에 봉사하고 이웃사랑을 실천할 시간이 없다.’라고 말하면서도, 천 원짜리 지폐를 차곡차곡 모으고, 그 안에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담으며 자신의 마음을 하느님께 봉헌한 형제자매님의 모습에서, ‘포도나무인 예수님 안에 머무르는 모습’을 그려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