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에 할머니 한 분이 오셨습니다. 몇 년 전에 황혼 이혼을 하셨다는 할머니께 “어르신,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간략하게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라고 여쭙자, “예, 신부님, 말도 마소! 참고 살아온 것만 생각허면 속이 다 뒤집어집니데이!”라며 구수한 사투리로 전남편 욕을 흠씬 하시면서 당신이 어떻게 기구한 혼인 생활을 해왔는지 장황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르신! 정말 많이 힘드셨겠습니다.”라는 작은 공감의 말 한마디에 할머니는 눈물을 글썽이시며 앞에 준비되어 있던 티슈(법원 책상에 티슈는 필수품)를 뽑아 눈물을 닦으십니다. “어르신, 그런데 굳이 이 연세에 법원에 오신 이유가 있으신지요? 혹시 재혼하실 사람이 있습니까?” “신부님, 이 나이 먹고 무슨 재혼입니꺼? 일 없심더. 그냥 조당 풀려고 그라지예. 이혼하면 성체 못 모신다카데예! 그리고 혼배성사하면 그 사람하고 영원히 매이는 거 아닙니까! 나중에 죽고 천당 갔는데 그 인간이 제 남편이라고 기다리고 있을까 무섭심더!”
이 이야기를 듣고 저는 ‘교회의 가르침과 교회법을 오해하셔서 이렇게 어려움을 겪고 계시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이야기에는 세 가지 오류가 있습니다. 첫째, 이혼하고 아직 재혼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영성체가 금지되지 않습니다. 둘째, 혼인성사로 인해 배우자에게 영원히 매이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법은 ‘바오로 특전’ 같은 혼인을 해소할 수 있는 몇 가지 경우를 제시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어느 한편의 죽음으로 혼인은 해소됩니다. 셋째, 죽어서 간 천당에 나쁜 남편이 기다리고 있지는 않습니다.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이 예수님께 “일곱 형제 모두의 아내였던 한 여자가 죽은 후 부활하면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라고 묻지 않습니까? 그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부활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곧, 하늘나라에서는 생전에 가졌던 혼인 관계에 매이지 않고 초월하여 전혀 다른 새로운 차원의 질서와 생명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며, 하늘의 천사들과 같아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남편이 하늘나라에서 기다리고 있을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교회의 가르침과 교회법을 오해하신 것이 할머니의 잘못도 아닙니다. 교회법을 몰라도 순수한 신앙인이 구원받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잘못된 상식과 오류 때문에 순박한 신앙인에게 성사적 은총이 막히는 현실이 안타까웠고, 동시에 신자들이 성사적 은총을 다시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회 ‘법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따라서 법원이라는 딱딱한 이름 때문에 문을 두드리는 것을 망설이지 마시고, 필요하면 어떤 내용이라도 언제든지 법원에 문의하시어 도움을 받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