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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서로에게

작성자 : 홍보국 등록일 : 2023-12-28 14:52:23 조회수 : 258

내과 전문의를 마친 후 다시 시작된 영상의학과 레지던트 시절은 하루하루 바쁜 일과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컨퍼런스를 준비하는데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평소 전화 통화를 하지 않는 시간에 울리는 전화벨이라 뭔가 심상치 않은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전화를 받자마자 장모님이 쓰러지셨다는 아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우선 구급차불러서 근처 병원 응급실로 빨리 모시라고 말하고는 급하게 움직였습니다. 월요일 아침이라 출근 차량이 많아 서울에서 집으로 가는 길은 거북이걸음처럼 무척 더디기만 했습니다. 가는 동안의 시간이 왜 이렇게 길게만 느껴지는지, 조급한 마음만 커져갔습니다. 택시 이동 중에 응급실 의사 선생님과 통화를 했고, 뇌지주막하 출혈인데 뇌출혈양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대기시켜 놓은 구급차에 장모님을 모시고 제가 근무하는 대학병원으로 급하게 올라왔습니다. 뇌혈관 촬영을 한 후, 바로 응급수술을 들어갔는데 수술을 하신 신경외과 담당 선생님께서 뇌가 너무 부어올라 겨우 혈관만 잡고 나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중환자실에서 며칠을 지내는 동안 다행히 장모님의 의식은 점점 돌아왔지만, 또다시 의식이 없어져 응급수술을 다시 받으셔야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전반적인 상태가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장모님은 한 달 만에, 의식 없이 들어왔던 병원을 두 발로 걸어 퇴원하시게 되었습니다.

 

장모님이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동안 우리 가족은 끊임없이 기도를 드렸습니다. 남들은 아주 절묘한 시간에 정확한 치료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하지만, 우리 가족은 하느님의 은총임을 확신하였습니다.

 

장모님은 당신이 건강하게 회복한 것은 가족과 많은 분들의 기도 덕분이라고 말씀하셨고, 우리는 장모님께서 어려운 시간을 잘 이겨내시고 곁에 계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가족 기도가 그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저녁 9시에 모여서 기도를 합니다. 기도하다가 졸기도 하고 때로는 바깥일 때문에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기도하기 싫은 꼬맹이는 대신 성경 쓰기를 하기도 하고, 기도하는 엄마 다리를 베고 누워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족 중에 누군가는 늘 예수님과 성모님과 함께 기도를 올리고 있다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 부족한 각자의 기도를 언제나 서로가 서로에게채워주고 있습니다. 행복한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가족이 함께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추운 겨울, 세상을 구원하실 예수님께서는 마구간에서 태어나 구유에 누우셨습니다. 비록 누추한 곳이지만 성모님과 요셉 성인의 따뜻한 가족의 품은 한겨울 추위를 녹이기에 충분하지 않았을까요? 성탄 구유를 바라보며 성가정 닮기를 겸손되이 청해봅니다.

 

글ㅣ유권 안토니오(내과·영상의학과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