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로서 세 차례 외국 파견 활동을 하였습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는 총상 입은 젊은이들을 진료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애국 청년이지만,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극렬 반동분자이지요. 어떻게 불리든 가장 고통을 겪는 것은 환자 본인과 가족입니다. 다리에 외고정장치를 장착한 채 목발에 의존하여 절뚝이며 지낸 지가 1년도 넘은 이들이 수두룩합니다. 제가 그곳 진료실에서 만난 한 청년은 결혼을 앞둔 예비신랑이었습니다. 그는 다리에 달려있는 외고정장치도, 목발도 다 벗어던진 멋진 신랑의 모습으로 사랑하는 신부 옆에 서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꿈이 이뤄졌을까요? 그들의 인사말(Assalamu Alaikum)은 우리가 미사 때마다 하는 “평화를 빕니다.”와 같은 뜻이지만, 그들에게 평화와 공존은 머나먼 이야기, 고통은 현재진행형입니다. 그에게 눈빛과 악수로 격려했습니다. “(언젠가는)멋진 결혼식과 멋진 신랑을 기원합니다!”
제가 두 번째로 활동했던 아프리카 오지 ‘감벨라’는 한국인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의료 환경이 열악합니다. 기본 진료 장비들은 거의 없는 반면, 파리를 필두로 낯선 열대 곤충들은 참으로 많습니다. 처음 몇 주간은 좌절의 연속이었습니다. ‘(첨단 장비로 현대식 치료를 하는) 한국의 정형외과 전문의를 도대체 왜 이런 곳에 보냈지?’라는 의문과 불만으로 활동을 중단하고 돌아가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던 어느 날, 저는 깨달았습니다.
내가 떠나면 이들에게는 ‘정형외과 의사가 아무도 없다.’는 것. 즉, 하느님께서 나를 보내신 뜻은 ‘폼나게’ 첨단 치료를 하고 오라는 것이 아니라 의사로서 ‘그곳에서’ 도움을 주는 것임을···.
이후로는 현지에서 가능한 방법들을 총동원해 열심히 현지인들을 진료했습니다. 그렇게 3개월의 임기를 마치고 귀국 후 되돌아보았습니다. 그 기간이 그들과 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의사로서 수술, 외래, 병실 진료를 통해 그들에게 도움이 된 부분도 없지 않겠지만, 현지인들에게는 ‘웬 동양인 의사’가 매일 나타나, 자신들의 상처를 돌보는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은 눈빛과 미소로 기억될지도 모릅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는 이유는 나귀와 은전 등 물질적 지원이 아니라, 그가 ‘버려진’ 사람을 기꺼이 돌봐주는 ‘이웃’이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팔레스타인과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이웃으로 함께 지낼 수 있었음이 가장 보람되고 감사한 일이라고 믿습니다. 아울러 저 또한 그들을 통해 엄청나게 많은 귀중한 것을 보고 배우고 얻어왔음을 깨닫습니다.
제가 강의 때마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봉사란 어떤 특별한 곳에서만 가능한 게 아니라, ‘지금 내 곁의 이웃에게’ 생각과 말과 행위로 도움이 되는 것, 그러면서 나 자신도 뭔가(기쁨·보람 등)를 얻는 것이다.”
매일의 생활에서 제가 만나는 모든 분들께 따스한 이웃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글ㅣ김용민 베드로(국립경찰병원 정형외과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