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 홍반 루푸스’라는 병을 알고 계시나요? 간호사인 저도 익숙하지 않은 병입니다. 루푸스는 외부로부터 인체를 방어하는 면역계가 이상을 일으켜 발생하는 희귀 난치 질환입니다. 면역계가 내 몸 안에 들어온 병균이 아닌, 자신의 건강한 세포와 조직을 공격해 몸에 염증과 손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2020년 어느 날부터인지 자고 일어나도 엄청난 피로감과 무력감을 느꼈고, 머리카락이 심하게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쉬면 좋아질 줄 알았는데, 점차 온몸의 뼈가 아프더니 잠을 못 자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계단을 내려오거나 물건을 잡는 일이 불가능해졌고 문고리 돌리기 등 평소에 했던 모든 일이 너무나도 힘들어졌습니다. 그렇게 서서히 루푸스라는 병이 제 몸을 침범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루푸스 진단을 받은 날, 이 병은 ‘완치가 불가능하여 평생 약을 먹으며 몸 상태를 관리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너무 무섭고 겁이 나서 진료실 밖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날 저는 그 길로 성당에 가서 주님께 ‘왜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라며 울고불고 따지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실 그때 저는 10년째 냉담 중이었습니다.
저는 병원에서 근무한 지 11년 차 된 간호사입니다. 그리고 이 병과 함께한 지 벌써 3년 차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가끔은 제가 몸을 모시고 사는 것처럼, 몸이 아플까봐 늘 전전긍긍하며 애지중지 신경쓰고 있습니다.
그동안 무엇이 바뀌었을까요? 이제 저는 성당에 다닙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들기때문에 주님께 계속 따지러 갑니다.
3년 동안 계속 여쭤보고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주님이 제게 응답하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엔 십자가의 예수님이, 손과 발에 박힌 못이 너무 아픈 나머지 슬픔과 절망으로 가득 차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주님이 십자가에 가볍게 기대어 평화롭게 누워 있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제 마음의 십자가가 ‘평온함’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또, 언젠가부터 환자와 보호자의 마음이 크게 와닿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너무 예민하고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생각됐던 부분들이 이제는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나서 환자와 보호자들을 대하니 어느새 저는 친절한 간호사가 되어있었습니다.
변해가는 제 모습을 보며 제 병은 아픔과 시련을 통해 저를 성장시키려는 주님의 큰 뜻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ㅣ이세정 골룸바(가톨릭대학교 부천성모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