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통영시 광도면 임내길 100에 위치한 황리 공소는 통영에서 30분 정도의 거리에 있습니다. 1934년에 지어진 한옥으로 89년 된 공소 건물입니다.
공소 인근에 주차를 하고 좁은 골목길을 따라 내려가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황리 공소를 발견했습니다. 황리 공소 아래쪽은 아파트와 빌라들이 들어서 있고, 위쪽은 시골집들이 평화롭게 세월을 지키고 서 있었습니다. 황리 공소를 알리는 입구 표식이 없었더라면 모르고 지나칠 만큼, 황리 공소는 평범한 시골집처럼 보였습니다.
공소의 짙은 민트색 문과 흰 바탕 벽에 오래 묵은 목골이 조화롭습니다. 지붕은 짙은 하늘색의 슬레이트인데, 아마도 기와를 걷어내고 가벼운 슬레이트 지붕으로 교체한 것 같습니다. 한옥 지붕은 어디서나 세월과 중력을 견디기 힘겨워 보입니다. ‘기와였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너른 마당 중앙에 한눈에도 오래되어 보이는 향나무 두 그루가 나란히 서 있습니다. 그 사이를 지나 공소의 문을 열어봅니다. 삐그덕, 세월의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립니다. 발을 옮길 때마다 바닥이 5cm는 밑으로 꺼지는 듯합니다. 시간을 고스란히 담은 나무 바닥의 소리는 세월과 초기 신자들의 신념의 무게만큼이나 묵직하게 들립니다. 늘 그렇듯 제대 앞쪽에 자리를 잡고 묵상을 합니다. 그 옛날 공소에서 신앙생활을 했던 신자들의 지난한 삶을 묵상했습니다.
황리 공소는 처음부터 성당의 쓰임새로 지어진 건물입니다. 고성과 통영 사이의 천개산 남쪽에 자리하여 규모 면에서 상당히 큰 ‘신앙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박해시대엔 거제도와 통영 인근의 섬에 숨어 살던 신자들이 고성과 문산으로 가는데 거점 역할을 하였다고 합니다. 1934년 공소가 처음 이곳에 자리 잡았을 땐 이 일대에서 가장 큰 규모의 기와 건물로 위용을 떨쳤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공소 안 회중석에 앉아서 될 수 있으면 더 오랜 시간을 머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평범한 일상에 아무도 모르게 내려앉은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싶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화와 안락함이 느껴지는 한적한 시골 공소였습니다.
글·사진ㅣ이선규 대건 안드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