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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철들래?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3-07-07 09:16:13 조회수 : 390

저는 50살이 넘었는데도 최신가요를 무척 좋아합니다. 운전할 때, 저는 요즘 가장 인기가 많은 걸그룹 가요를 아주 크게 틀고 신나게(아주 잘) 따라 부릅니다. 간혹 동기 신부들이 제 차를 타면, ‘나이가 몇인데 가사도 알아듣기 힘든 노래를 듣냐? 언제 철들래, 영기야!’라며 음악 소리를 강제로 줄이기도 합니다.

교구장 비서로 일했을 때, 주교님들과 교구청 사제들은 공동식사를 하면서 주로 교구 현황이나 교회의 여러 사안에 관해 대화하셨습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요즘 연예계 동향은? 지금 1위 영화는 무엇이지? 올해 프로야구는 어느 팀이 우승할 것 같아?’ 이러한 질문을 했고, 저는 연예인 누가 이혼했고 그 이유가 사실은 뭐라더라, 지금 인기 있는 영화는 무엇인데 제작비가 얼마 들어갔고등 주절주절 온갖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시 교구장이셨던 인자하신 최덕기 주교님께서 식사하시다 저를 조용히 쳐다보시는데, 그 눈빛에 한 신부님! 대체 언제 철들래요.’라는 자막이 나오는 것 같아,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던 기억이 납니다.

 

철들다.’의 사전적 의미는 사리를 분별하여 판단할 줄 알게 되다.’입니다. ‘은 여름철, 겨울철 할 때의 을 말하며 이는 절기(節氣)자가 변한 말이라고 합니다. 농경 사회였던 우리나라에서 농부는 당연히 철, 즉 계절을 잘 알고 기후와 자연의 변화에 맞게 대처해야 농사를 잘 지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의미가 확대되어, 오늘날에는 지혜, 분별, 올바른 판단력등이 없는 사람을 +부지(철을 제대로 모르는)’라고 부르곤 합니다.

 

모두가 똑똑한 세상입니다. 대단한 스펙을 보유한, 소위 가방끈 긴전문가들로 가득한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하다 보니, 동기나 과정은 어찌 됐든 성공만하면 인생의 에 대처하는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니, 치열한 경쟁 사회에는 관심 없이 다른 것에 가치를 두고 자신만의 모습으로 살아가려는 이들에게 부모님과 사회는 도대체 너는 언제 철들래? 언제 정신 차릴래?’라며 핀잔을 주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마태 11,25)라고 말씀하시며, 하느님의 뜻은 철부지들에게만 드러난다고 단언하십니다. 무슨 뜻일까요? 저같이 언제 철들래?’라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들으며 살아온 이들에게 큰 위로가 되는 말씀일까요? 그것은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 사제들은 배우지 못한 백성들을 어리석은 철부지로 여겨 무시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진정으로 학덕과 교양을 갖춘 사람이라면 알아도 모르는 척, 선행을 실천하고도 감추고 아는 것도 모르는 척 눈을 감아주는 겸손함을 가지고 있기에,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을 가진 이들을 철부지 어린아이로 같이 비유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나잇값 못하는 철부지가 아닌, 순진무구하고 맑은 마음으로 하느님과 일치하려는 어린아이와 같은 철부지들에게 주님께서는 당신의 현존을 드러내시고 하늘나라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그나저나, 저는 언제쯤 진정으로 철이 들게 될까요?


글ㅣ한영기 바오로 신부(성 라자로 마을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