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 성당이 있는 전북 임실에 도착하면, 묻지 않아도 이곳이 우리나라에서 치즈로 가장 유명한 고장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치즈와 관련된 그림들이 마을 곳곳에 벽화로 그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인자한 모습의 지정환 신부 초상이 먼저 눈에 띕니다. 지정환 신부의 본명은 디디에 세스테벤스로 1931년 벨기에 태생이며 29살이던 1959년 12월 한국에 오셨습니다. 지정환 신부는 전쟁 후 가난한 이웃의 피폐한 삶을 안타깝게 여겨, 전주교구 부안 성당으로 부임한 1961년부터 3년간 간척공사로 농지를 만들고, 1964년에는 이곳 ‘임실 성당’으로 부임해 농사지을 곳이 변변찮은 임실을 온갖 노력 끝에 치즈의 고장으로 만드셨습니다.
이역만리 이름도 생소한 한국에서 사제직을 수행한 한국교회의 ‘푸른 눈’ 사제들의 헌신은, 제가 성당 순례를 하면서 느낀 가장 은혜로운 감동 중 하나입니다. 한 사람의 희생으로 많은 사람이 선물과 같은 평화를 얻기도 합니다. 임실 역시,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희생과 헌신으로 만든 기적과 같은 씨앗의 열매입니다. 희생과 헌신과 봉사가 기적을 이루어내는 작은 씨앗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당연하겠지만 임실 성당에서는 어쩐지 발효가 잘된 치즈 같은 색과 향기가 납니다. 유럽에서나 만날 수 있을 법한 고성 같은 외형도 독특하지만, 내부의 장식이나 색도 치즈의 색과 비슷합니다. 지정환 신부의 노고가 성당 안 곳곳에서 묻어납니다. 성당을 나와 산양유 협동조합건물도 둘러보았는데, 지정환 신부는 1981년 임실을 떠날 때까지 이곳 2층에서 기거하셨다고 합니다. 협동조합 건물 앞 안내판의 글귀가 가슴을 따뜻하게 합니다.
“우연한 만남은 없으며 하느님의 뜻으로 우리가 만나게 되었음을 강조했던 지정환 신부를 만나고 되새겨 보는 자리이길 바란다.”
하느님의 선하신 계획 안에 만나는 우리 모두의 만남이, 특별한 의미와 목적이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글·사진ㅣ이선규 대건 안드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