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부 주일학교 교사를 하던 저는,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해군 의무병으로 입대 하였습니다. 전투함에 배치되어 뱃멀미를 어느 정도 견딜 수 있게 되니, 1년 만에 진해에 있는 군 병원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몸은 조금 편해졌을지 모르지만, 처음부터 다시 적응하려니 심적으로 힘들었습니다.
그곳에서 의지가 된 곳이 바로 병원 경내에 있는 ‘성당’이었습니다. 오래되어 낡긴 했지만 성전과 주방, 응접실까지 갖추고 있어, 전투함 침실에 쭈그려 앉아 공소예절을 하던 때와 비교하면 신앙 생활하기에 무척 좋은 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미사 집전을 위해 주일 오전마다 오시던 군종 신부님께선 신자 수가 3명으로 줄어서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오시지 않게 되었습니다. 신자 중 계급이 가장 높았던 저는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군무원 몇몇이 공소 안 주방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일단 신자 수를 늘려야 했습니다.
병동병이었던 저는 새로 입원하는 병사들의 인적 사항 중, 종교란에 ‘천주교’가 기재되어 있으면 개인적으로 찾아가 주일 공소예절에 같이 가자고 꼬셨습니다.
그러나 선뜻 응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무슨 수를 내야 했습니다.
순간, 성당 내에 있는 조리시설이 떠올랐습니다.
일단 군대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끓인 라면’을 공소예절 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러자 신자 수가 꽤 늘어났고, 제가 전역할 때까지 잘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병원 내 ‘성당’을 지켜냈습니다.
한국전쟁 때 옥수수 가루를 받으려고 성당에 나가기 시작하셨다는 저희 아버지의 말씀이 겹쳐집니다. 보잘것없이 작은 이유라도 그 속에는 주님의 따뜻한 부르심이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ㅣ한지홍 시몬(권선2동 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