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후 진료가 끝나갈 무렵, 평소 알고 지내던 자매들이 흐느끼며 진료실로 들어왔습니다. “선생님, 어떡해요? 엄마가 대장암에 걸리셨어요.” 암 진단을 받았으니 얼마나 놀랐을까요? 저는 먼저 위로의 말을 전하고 가져온 영상 자료를 살펴본 후, “암은 암인데 착한 놈인 것 같아요. 주변도 깨끗하고 전이도 없어 보이고, 수술하기도 편한 자리여서 잘 제거만 하면 괜찮을 것 같네요. 암으로 진단받은 것은 마음 아프지만 진짜 다행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자매들은 “주말 동안 속 끓이고 있었을 텐데 이렇게 말씀해주시니 걱정이 사라지네요. 가족들 모두 좋아할 것 같아요.” 하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실제로 다행히 어머님은 수술이 잘 되어 지금도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십니다.
어느 날, 대학생 시절 교리교사를 할 때 담당했던 제자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선생님, 엄마 때문에 속상해 죽겠어요. 엄마가 이번에 재발한 대장암 수술도 안 받고 아무것도 안 하시겠대요. 벌써 몇 번째 재발하고 수술이냐면서요.” 어머님은 제 교리교사 시절에 특별히 저에게 많은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던 분이었습니다. 당신 자녀들의 사소한 일상부터 진로·신앙 상담까지 스스럼없이 얘기하셔서 그런지, 제가 하는 말은 참 잘 들어주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머님, 힘드시죠?”라며 말을 더 이어가기도 전에, “아이고~ 선생님, 이제 할 만큼 했어요. 저번에 항암 치료 힘들었어요. 이제 그만하고 하느님이 오라고 하면 그냥 하느님께 가려고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도 전신 상태가 좋으셨고, 재발 부위도 크지 않아서 수술받고 항암 치료를 잘 견디시면 좋겠다는 설득에, 또 한 번 넘어가 주시는 어머님의 통 큰 허락이 감사했습니다. 몇 달 뒤에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선생님, 감사해요. 수술도, 항암 치료도 이번에는 비교적 수월하게 잘 마치셨어요. 어머니가 감사하다고 전해달래요.” “그래, 전화해 줘서 고마워. 그리고 어머님께도 잘 견뎌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해줘.”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어려움이 다가오고, 때로는 죽을 만큼 힘든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어떻게든 아주 작은 희망의 빛이라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요. 암 진단을 받는 것은 분명 무섭고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잘 치료할 수 있는 단서를 찾아 위로하고 설득하고 이해시켜서 잘 이겨낼 수 있다는 말 한마디를 전하는 것이, 때로는 진행된 병으로 인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을 함께 마음 아파하며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이, 어둠 속에서 아주 소중한 빛의 길로 안내하는 일 일 것입니다. 아주 적지만, 소중한 그런 마중물의 역할을 할 수 있어서 참으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글ㅣ유권 안토니오(내과·영상의학과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