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1일 주보 내용은 ‘치유자는 하느님이며 인간은 그저 섭리에 따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주인이 맡긴 금화를 오로지 수건에 싸둔 게으른 종처럼(루카 19,20) 하늘이 주신 능력을 낭비하거나 남용해서는 안 되고, 이웃을 돕는 데에 바쳐야 합니다. 아래는 제가 경험했던 척추 환자들 사례입니다.
사례 1) 고3 수험생이 허리 디스크가 파열돼, 책상에 앉아 공부를 못할 정도로 고통 속에 있습니다. 입원-수술을 할 경우, 학교를 며칠 빠져야 했기에 선뜻 결정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사례 2) 30대 주부가 목 디스크로 인한 심한 ‘상지 방사통’으로 입원하였습니다. 남편은 합병증 등 목(경추) 수술에 대한 우려와 가사 및 육아의 공백 등으로 수술을 극렬히 반대했습니다.
사례 3) 45세 남성이 화분을 옮긴 뒤 갑자기 허리가 아파서 소위 ‘유명 척추병원’을 방문했는데, 병원에서는 MRI 검사 후 디스크 협착이 심하다며 수술을 권고했다고 합니다. 방사통(다리 당기는 증상)은 없고 허리만 아픈데 수술을 꼭 해야 하냐며 상담을 요청하셨습니다.
디스크(추간판 탈출증)는 팔이나 다리로 가는 신경근이 눌려 방사통과 신경 압박증상을 유발하는 병이므로, 방사통이 없는 사례 3)은 수술을 서두르지 말아야 합니다. 게다가 협착증은 일정 거리를 걷고 나면 엉덩이부터 다리 뒤로 근육이 터질 듯이 아파서 쉬게 되는 간헐적 파행이 주 증상이며, 요통은 주 증상이 아닙니다.
디스크 환자의 70%는 수술과 같은 적극적인 치료를 하지 않아도 6개월 이내에 낫습니다. 나머지 30%는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일까요? 디스크 환자 중 수술이 필요한 경우는 신경마비 증상이나, 참을 수 없는 방사통이 있을 때입니다. 하루하루 극심한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는 환자 본인은 한시라도 빨리 안 아프게 해 달라고 간청함에도 가족이 여러 가지 이유로 반대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사례 1)은 수험생 두 명이 기억나는군요. 한 학생은 수능시험 때까지 수술을 미루기로 결정했는데, 통증으로 집중이 안 되어 결국 수능 결과가 나빴다고 하며, 다른 학생은 수술 후 2~3일 뒤부터는 편안하게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사례 2)의 주부의 경우에는 환자(및 보호자)입장에서 궁금하거나 걱정되는 부분에 관하여 자세히 설명한 뒤, 이솝 우화에 나오는 ‘북풍과 태양의 내기’를 떠올리며 결정을 기다렸습니다. 다음 날 남편은 수술에 동의했고, 수술 이후 환자의 고통은 즉시 사라졌습니다. 며칠 뒤 부부는 손을 잡고 행복한 웃음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척추 의사의 보람된 순간이었습니다.
수술, 시술 등 인위적 치료 여부는 참으로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사례 3)처럼 내담자의 증상과 영상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수술은 안 해도 된다고 말씀드리면, 안도와 감사의 눈물을 보이기도 합니다. 반면 사례 1, 2)처럼 환자와 가족의 상황을 모두 감안해 신중히 의논-결정한 결과, 수술을 통해 극심한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도운 경우도 많았습니다.
예수님처럼 단 순간에 치유의 기적을 얻을 수 없는 ‘인간 의사’의 몫은 하느님이 주신 능력을 활용하며 환자마다 무엇이 최선인지를 열심히 살펴보고 돕는 것입니다.
“저희는 보잘것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공동번역 루카 17,10).
글ㅣ김용민 베드로(국립경찰병원 정형외과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