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 4월, 30대 초반의 한 청년이 몸에 힘이 빠져 쓰러지는 증상으로, 멀리 경상남도 남해에서 수원에 있는 성빈센트병원 수면센터까지 찾아왔습니다. 청년은 동네 의원부터 거주 지역의 큰 병원, 서울의 대학병원 등을 찾았었는데, 정확한 진단을 받지 못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필자의 기면병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던 마산의 한 의사에게서 기면병이 의심된다며 성빈센트병원을 추천받았다고 합니다. 청년은 6개월 전부터 웃을 때, 화날 때, 농담을 주고받을 때, 그리고 걷다가도 무릎과 몸에 힘이 빠져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넘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낮에 심하게 졸린 증상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체하지 않고 ‘수면다원검사’와 ‘다중수면잠복기 검사’를 시행했습니다. 결과는 예상대로 심한 기면병이었습니다.
‘기면병’은 낮에 심하게 졸린 병입니다. 일상생활도 힘이 들 정도로 너무 졸려서 몸에 힘이 빠지는 증상이 나타나는데, 이를 ‘탈력발작’이라 합니다. 이 청년은 탈력발작 증상으로 인해 쓰러졌던 것인데, 희소병인 기면병을 진료해 본 경험이 없다면 진단을 내리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동안 정확한 진단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1999년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기면병 센터에서는 ‘기면병은 뇌에서 생성되는 하이포크레틴이라는 신경전달 물질이 부족해서 생기는 병’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당시 필자는 스탠퍼드대학 기면병 센터 방문 교수로 있었는데, 이 인연으로 귀국 후 하이포크레틴에 관한 후속 연구를 스탠퍼드대학의 미뇨 교수와 함께 진행해 여러 논문으로 발표했습니다. 또, 언론을 통해 기면병을 알리고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이러한 활동으로 수많은 기면병 환자가 성빈센트병원 수면센터을 찾기 시작했고, 현재는 1,200명 이상의 환자가 진료받고 있습니다. 또, 기면병 환우협회 결성, 아시아 기면병 학회 창립, 수많은 기면병 연구논문 발표 등 기면병에 대한 인식 및 제도 개선을 위한 그동안의 노력은 2018년도 가톨릭중앙의료원의 영성구현 우수상을 받는 영광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낮에 졸린 것이 병인지 몰랐어요. 우리 애가 게을러서 그렇게 잠을 많이 자는 줄만 알았지요.” 기면병 진단을 받은 한 아이의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기억에 오랫동안 남습니다. 그동안 자신의 증상이 병인지도 모른 채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온 환자들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이 길을 걷게 된 것은 하느님의 인도와 은총 덕분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최근에는 신약에 대한 임상 시험 결과, 치료 효과가 좋아서 환자들의 기대가 큽니다. 하지만 치료에도 불구하고 심한 증상이 지속돼 일상이 어려운 환자들이 많습니다. 여전히 기면병에 대한 우리 사회의 높은 관심이 절실히 필요함을 진료실에서 매일매일 체험하며, 기면병 환자들의 더욱 나은 삶을 위해 하느님의 이끄심을 믿고 따라가 봅니다.
글ㅣ홍승철 갈리스도(가톨릭대학교 성빈센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수면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