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5년 8월 31일, 조선의 첫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는 작은 목선 ‘라파엘호’를 타고 귀국길에 오릅니다. 자신을 조선의 첫 사제로 세우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척박한 땅’ 조선에 하느님 신앙을 전하기 위해 떠난 길이었습니다. “길은 걸어가면 뒤에 생기는 것입니다.” 성 김대건 신부가 조선 입국을 만류하던 사람들에게 했던 말입니다. 어렵고 힘든 길, 혹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길이었지만, 그의 굳은 신념 앞에서는 그 어떤 것들도 걸림이 될 수 없었습니다.
제주도의 아담한 어촌, 용수리 마을 앞의 ‘성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 기념성당’은 25세의 젊은 나이로 순교한 조선의 첫 사제 성 김대건 신부를 기념하기 위해 2008년에 건립되었습니다. 성 김대건 신부는 성 피에르 모방 신부의 추천으로 마카오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사제 서품을 받은 후 귀국하였으나, 안타깝게도 1년밖에 사목 생활을 하지 못하고 붙잡혀 순교하였습니다.
제주의 성당을 순례하던 마지막 날, 표착 기념성당으로 들어가는 작은 길과 성당의 앞바다를 보니 알 수 없는 뭉클거림이 가슴 저 밑에서부터 올라왔습니다. 제가 3년 내내 다닌 대구의 대건고등학교가 성 김대건 신부의 이름을 딴 학교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제야 성 김대건 신부가 103위 순교성인의 ‘첫머리’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용수 성지가 있는 이곳 용수리 마을은 중국 상하이를 떠난 ‘라파엘호’가 거친 풍랑으로 서해의 망망대해에서 한 달여를 표류하다 난파 고비를 넘기고 표착한 곳입니다. 제주교구는 제주지역에서 한국 최초의 사제가 집전하는 미사와 성체성사가 이루어진 것을 기리기 위해 제주표착 기념성당과 기념관을 설립하였습니다. 갖은 고생 끝에 표착한 조선 땅(제주)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성 김대건 신부와 신자들의 마음엔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사가 넘쳤으리라 생각합니다. 비록 계획한 경로는 아니었지만, 성 김대건 신부는 이 또한 하느님의 뜻과 섭리로 알고 자신이 받은 사제적 소명을 다하기 위해 이 모든 것을 감당해 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바오로 사도는 로마의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을 통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사를 알 수 없는 가운데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오직 하느님만을 바라보는 신앙을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