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말을 보호자에게서 듣는 순간이 자주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신경이 많이 쓰이는 경우가 바로 중환자를 진료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중환자실은 언제나 긴장의 연속입니다. 세심하게 체크하고 환자의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해 즉각적으로 대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레지던트 시절, 의식이 없는 20대 젊은 남자가 중환자실에 들어왔습니다. 몸이 붓고 낮은 혈압에 열이 펄펄 나는 위중한 상태였는데, 원인은 간경화와 패혈증이었습니다. 동맥혈을 통해서 혈압을 측정한 후 혈압을 올리는 약과 항생제를 투여해도 혈압은 쉽게 잡히지 않았고, 더불어 소변까지 나오고 있지 않는 최악의 순간이었습니다. 환자의 상황을 설명해야 할 것 같아서 보호자 면담을 신청했습니다. 환자 어머니는 중환자실에 들어오자마자 “선생님, 저 기억하시죠? 제 남편 주치의셨잖아요.”라고 했습니다. 몇 달 전에 간경화와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난 환자의 아내였습니다. “선생님, 남편도 그랬는데 이번엔 아들이 그러네요. 아들마저 보낼 수는 없어요. 꼭 살려주세요.” 어머니는 제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습니다.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위험하다.’라는 말을 하려고 했는데, ‘상황이 어렵고 힘들지만, 최선을 다해보겠다.’라는 말로 바꿔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님의 애잔한 마음의 기도가 하늘에 닿았을까요?
며칠 후부터 서서히 환자의 혈압이 오르면서 열도 떨어지고 소변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그 청년은 위기의 순간을 잘 넘겼고 이후 의식과 호흡도 안정을 찾아서, 주렁주렁 달려있던 수액의 개수도 줄이고 인공호흡기도 떼었습니다.
생사를 넘나드는 아들을 위해 수없이 기도를 올렸을 어머님의 마음을 통해 성모님을 떠올려봤습니다. 사람들은 아들 예수가 ‘죄인들과 어울려 다니고 먹보요, 술꾼’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군사들은 아들 예수에게 ‘하느님을 모독했다.’는 죄명으로 매질하고 가시관을 씌우며 조롱했습니다. 십자가를 짊어지며 처참하게 망가진 예수님의 모습은 죄인과도 같았습니다. 이런 모습을 바라본 성모님의 마음이 시메온의 예언처럼 칼에 꿰찔리는 듯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그러나 성모님은 또 그렇게 곰곰이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시며 피눈물 흘리는 마음을 봉헌하셨습니다.
봄과 여름의 길목에 흐드러지게 피어오른 꽃들이 천상 모후의 관을 받으신 성모님을 찬양하는 것 같은 5월입니다. 더욱 특별히 지상의 어머니 마음으로 천상의 어머니께 지극히 간절한 은총의 도움을 청하는 성모 성월이 되길 기도해 봅니다.
글ㅣ유권 안토니오(내과·영상의학과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