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한걸음 뒤로 물러난 가을의 초입. 서울 중림동에 있는 약현 성당을 찾았습니다. 서울의 성당들을 순례하려고 마음먹은 2박 3일 내내 좋지 않은 날씨로 가벼운 발걸음은 아니었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성당을 만난다는 설렘과 기쁨은 큰 은혜가 되었습니다. 명동 대성당 미사에 참석하고 곧바로 중림동의 약현 성당을 향해 궂은 날씨였지만 천천히 도보로 이동하였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처음의 것’을 본다는 것은 항상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그 앞에 서면, 성당이 세워지던 그때의 모습이 상상되기도 하고, 신자들이 흘린 땀 내음이 전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약현 성당은 1784년 이승훈 베드로가 한국인 최초로 세례성사를 받은 이후 108년 만인 1892년 한국 땅에 최초로 세워진 서양식 성당입니다. 100여 년의 기나긴 박해 기간에도 꿋꿋하게 믿음을 지켜내 온 ‘한국천주교회’가 마침내 성전을 건립하고 미사를 집전한 첫 성당이니, 당시 신자들의 가슴은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은혜로 충만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건축기술과 재정이 부족하여 성당의 형태를 간소화하였지만, 마침내 박해가 종식되어 신자들이 직접 벽돌을 굽고 제조하여 지은 ‘최초의 서양식’ 성당이라는 면에서 큰 의미가 있는 성당입니다.
얕은 언덕에서 약초가 많이 자란다고 하여 ‘약현’이라는 이름이 붙은 고개 위에 세워진 약현 성당은 조선시대에 수많은 순교자의 사형집행지였던 서소문 네거리가 바라보이는 곳에 서 있습니다. 이곳에 성당이 건립된 것이 박해 시대에 순교한 수많은 신앙 선조들을 잊지 말고 이 땅에 하느님의 말씀을 곳곳에 전파하라는 계시처럼 느껴지기도 하였습니다. 1896년 3월에는 이곳에서 한국천주교회 최초로 사제 서품식이 거행되기도 하였으니, 사제들의 감동과 사명감 또한 충만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비록 명동 대성당이나 대구의 계산 대성당처럼 크고 화려하지 않지만, 담겨진 의미만큼은 그 어느 성당에 견주어도 절대 작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사진ㅣ이선규 대건 안드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