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 되면 성모님 사랑 덕분에 살아갈 수 있었던 최베드로 형제님이 생각납니다. 형제님이 어렸을 때, 가정폭력을 일삼던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가 가출했습니다. 그래서 중학교도 못 가고 어린 남동생을 챙기며 힘겹게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두 형제를 돌보지도 않으면서 가끔 집에 오는 날이면 그들의 푼돈을 뺏앗기 일쑤였습니다. 돈을 빼앗긴 날이면 형제님은 너무 속상한 마음에 성당에 가서 성모님께 하소연하고 한참을 울었다고 합니다. 그러고 나면 다시 마음이 풀려 동생과 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버텼다고 합니다. 형제님이 처음 진료차 내원하신 날, 이러한 힘들었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시간이 꽤 많이 흐른 뒤에 형제님은 다시 어머니를 만나서 함께 살게 되었지만, 삶의 고통과 아픔 속에서 얻은 고질적인 위장병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자신을 위해 살기보다는 가족을 위해 평생을 살았고, 아픔을 참고 사는 게 몸에 밴지라 만성 궤양에 소화불량이 따라다닌 것입니다. 마침 이때는 형제님이 냉담 중이라, 저는 형제님에게 성당에 나가길 열심히 권했습니다. 그러나 형제님께선 마음은 가고 싶지만, 죄를 너무 많이 지은 것 같아서 못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한참의 시간이 흘러, 형제님은 건강이 많이 회복되어 오셨습니다. 청천벽력처럼 어머니가 암 선고를 받게 되었지만, 이후 어머니와 함께 방방곡곡 여행을 다니며 두 분 모두 건강이 좋아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또한, 어머니의 말씀 덕분에 드디어 냉담을 풀고 다시 성당에 나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는 우리 가족의 일처럼 기뻤습니다. 베드로 형제님의 얼굴에는 왠지 모를 미소가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야, 너 그동안 정말 잘 살았다. 훌륭해!”라는 성모님의 음성이 형제님에게 들려오는 듯했다고 합니다. 형제님이 다시 성당에 갔을 때, 성모님이 늘 그 자리에서 형제님을 기다리고 계셨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성모님과의 이야기를 전하며 웃는 형제님의 얼굴이 마치 천사의 모습과도 같았고, 예전보다 혈색도 더 환하게 보였습니다. 베드로 형제님은 어머니와 헤어져 있을 때나 인생의 힘든 때에도 성모님으로부터 위로받았고, 냉담을 푼 이후에도 성모 신심 덕분에 육체의 병을 많이 회복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많은 종류의 사랑이 있지만, 성모님의 사랑만큼은 천주교인으로서 꼭 간직해야 할 것입니다. 최베드로 형제님 덕분에 알게 된 성모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맑고 밝은 성모 성월 어머니를 닮아가는 시기를 보내고 싶습니다.
글ㅣ차언명 바울라(광명 차한의원 원장, 소하동 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