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뜨고 화려함이 넘치는 여행지보다는 말없이 침묵이 흐르는 공간이 때로는 가장 적합한 여행지일 수 있습니다. 밀양의 낙동강변에 위치한 명례 성지는 영육이 가난해진 이에게 은혜로이 내려진 선물과도 같은 곳이었습니다.
명례 마을 골목길을 따라 나타나는 낙동강변에서 성당이 있는 언덕을 올려다보면, 1896년 경남지역에서 최초로 세워진 자그마한 한옥 성당 하나가 보입니다. 명례 성지의 ‘성모승천 성당’입니다. 너른 언덕에 단아하게 자리한 성당의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답습니다. 태풍에 쓰러져 1938년에 다시 지었다고는 하나 그로부터도 84년 이상이 되었으니 그 세월도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명례 성지 조성추진위원장이셨던 이제민 신부님이 이 땅을 성지로 조성하려고 구상하였을 때, 성당이 주인공이 되고 다른 시설물들은 배경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구상처럼 실제로 성당 앞에 서면, 종탑과 한옥 성당 이외에는 다른 건축물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멀찍이 명례 성지의 기념탑인 듯한 사각형의 건물이 보이기만 할 뿐 아름다운 동산이 전부인 것처럼 보입니다.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한 독특한 구조의 기념 성당은 콘크리트로 마감되어 있습니다. 지형의 높낮이를 따라 지어진 기념 성당은 마치 지하 시설물 같으면서도 땅 위에 있는 듯한, 그래서 있는 듯 없는 듯 자신의 존재를 감추기도 합니다.
성당 주위의 조경은 무척 아름답습니다. 마치 널따란 정원처럼 잘 조성되어 있습니다. 14처가 놓인 길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다 보면, 열린 하늘과 낙동강변의 넉넉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화창한 하늘이 낙동강변의 아름다움 위에 떠 있습니다.
군데군데 놓인 의자에 앉아 짓눌린 영혼을 잠시 쉬게 하며 하느님을 묵상하기 좋은 휴식처였습니다.
글·사진ㅣ이선규 대건 안드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