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경 부제였던 저와 동창들은 ‘젊음을 바친’ 신학교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학업적으로 ‘논문’이라는 것을 마무리하며, 사제 서품 전 피정을 앞두고 마지막 담금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신학교에서는 떠나는 부제들과 군입대를 앞둔 신학생들을 위해 ‘가을 소리 마당’이라는 작은 음악회를 엽니다. 저는 ‘드디어!’라는 마음과 ‘떠남’이라는 두 가지 복잡미묘한 감정을 가지고 ‘가을 소리 마당’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부제들도 다 함께 노래를 부르고, 한 동창이 대표로 이별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앞선 상황들을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는 동창의 이별사를 소개하고 싶어서입니다. 당시 부제였던 동창 신부는 울먹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제가 되기 위해 부푼 꿈을 안고 못자리에 온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떠나야 할 날이 다가왔습니다. 제 청춘을 불사른 신학교를 떠나는 것이 너무나 아쉽습니다. 또 왜 그렇게 아웅다웅하며 살아갔는지 후회가 많이 됩니다. 사랑할 많은 기회가 있었는데 사랑하지 못했고, 용서할 기회가 많았는데 용서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후배님들은 부디 청춘을 바치는 이곳에서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더 치열하게, 더 많이 사랑하며 살아가길 바라며 응원합니다.”
진심 어린 이별사에 제 마음도 뭉클해졌습니다. 그러던 찰나,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춘을 바치며 예수님을 따르겠노라 호언장담했지만, 그러지 못했던 나약한 ‘나’를 더 많이 만났던 곳이 신학교였습니다. 교수 신부님들과 교수님들의 가르침과 사랑, 선배들의 관심과 모범, 후배들의 열정과 인내를 만난 곳 역시 신학교였습니다. 또 신학교에 계신 수녀님들과 수많은 교직원들의 협력과 헌신을 통해 ‘나’라는 부족한 존재가 사제로 거듭난 곳이 바로 신학교였습니다.
물론, 동창 신부의 이별사가 제 기억의 왜곡으로 미화된 것일 수도 있으나, 그 순간의 울림은 여전히 제 가슴 한편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또 가끔 신학교를 방문할 일이 있으면 여전히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사제로 더 충실히 살 것을 다짐하게 됩니다. 그래서 신학교는 저와 사제들의 ‘마음의 고향’인 듯 싶습니다.
제 마음의 고향인 신학교에서의 추억을 상기한 것은 오늘이 바로 부활 제4주일이면서, ‘성소 주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부름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성소 주일’은 교우들이 ‘사제·수도자·선교사’의 삶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이들과 영적 일치를 위해 기도하는 날입니다. 오늘도 여전히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사제·수도자·선교사’를 위하여 기도 중에 기억해 주시길 청합니다. 또한 신학교와 수도원 양성소에서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청춘도 기억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글ㅣ이재혁 요한 사도 신부(제1대리구 청소년2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