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바오로의 고3 여름 끝 무렵, 수험생 자녀를 위한 백일 묵주기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일하는 엄마 입장에서는 백 일 동안 매일 저녁 기도를 할 자신이 없었지만, 기도회에 참석하지 않으면 왠지 바오로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 것 같았습니다. 그때 친한 자모님들이 모두 같이 하자고 해서 얼떨결에 기도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수험생 백일기도’를 시작한 첫날은 지금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준비된 십자고상과 성모상 옆에 모든 수험생의 이름과 세례명이 적힌 아크릴 판이 있었습니다. 내 아이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위해 함께하는 기도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촛불과 간절한 마음이 어우러진 기도 소리는 그 어떤 노랫소리보다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기도 말미에는 아이들 이름 하나하나를 함께 불러 주었습니다. 그 순간 내 아이를 위해 이렇게 많은 부모님들이 기도해 주신다고 생각하니 마음속에 뜨거운 느낌이 밀려왔습니다. 내 아이, 네 아이 할 것 없이 함께 기도하니 하느님 사랑을 가득 받는 느낌이었습니다.
첫 기도에서 벅찬 감동을 느끼게 되었고, 그 후 부득이한 하루 이틀을 제외하고는 성실하게 참석했습니다. 퇴근하고 부랴부랴 뛰어가서 기도를 하게 되니 간혹 졸기도 했습니다. 그때 어떤 자모님이 기도하다가 조는 것은 하느님 품 안에서 푹 쉬는 거라 괜찮다고 말해주시며, 기도를 안 하는 것보다는 하다가 조는 게 백 번 낫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이렇게 저의 기도가 조금은 부족했을지 모르겠지만 수험생 백일기도를 하면서 함께하는 기도의 힘을 알게 되었고, 하루가 아니라 백 일간 기도를 하니 그 기간에는 저절로 모든 일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때 기도했던 수험생들 대부분이 자기의 진로를 잘 찾아서 진학을 했습니다. 바오로는 가장 원했던 대학에는 불합격하고, 두 번째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그러나 바오로와 우리 가족은 하느님께서 바오로가 가장 합당한 선택을 하게 해주셨다고 생각했고, 바오로도 대학 생활을 잘해 나갔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함께 모여 기도하는 곳에 항상 계시고, 우리가 청하는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신다는 것을 수험생 백일기도를 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 주는 부활 제2주일 곧, 하느님의 자비 주일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구하는 기도를 가족이나 지인과 함께 바친다면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더욱 충만하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글ㅣ차언명 바울라(광명 차한의원 원장, 소하동 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