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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날의 행복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3-04-14 09:41:04 조회수 : 359

이사를 와서 찾아간 신둔 성당, 당시엔 작은 컨테이너가 교리실, 판넬식 건물이 성전인 아주 작은성당이었습니다. 자모회 간식 봉사만 하고 미사만 오가던 어느 날, 주보에서 가족 캠프 흑산도 10만 원, 어린이 6만 원이라는 공지를 보았습니다. “! 정말 저렴하네.”하며 단번에 신청했는데 가서 보니 모두가 한 가족처럼 친한 사이였습니다. 겨우 얼굴만 몇 분 알고 지내던 우리 가족은 이방인의 느낌을 살짝 받았습니다. 하지만 있는 곳이 섬인지라 빼도 박도 못하는 덕분에 어쩔 수 없이 친분을 쌓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 또한 하느님의 계획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100여 명이 34일 먹을 음식과 냉장고, 트럭까지 배에 싣고 간 억척스러움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옵니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아름다운 자연 안에서 온종일 자유와 친교를 만끽한 우리만의 그 시간은 마치 정글의 법칙을 연상케 했습니다. 우리 아들(당시 8)흑산도 여행이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는 여행이었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흑산도 캠프에서 모아진 힘을 이후 볼펜 작업, 박스 접기, 바자회 등 성전 건축비 마련에 쏟아부었고, 마침내 하느님의 집을 짓게 되었습니다. 벽돌을 하나하나 나르고, 돌가루를 마시며 벽화를 구성하고, 한 땀 한 땀 콕콕 찍어 완성한 벽면(라주어 페인팅)이며, 우리 신자들의 땀과 피가 배어 있는 성전을 짓던 그때를 생각하며 이 글을 쓰고 있자니 예상치 못한 눈물이 흐릅니다. 매주 미사 후 성체 다음으로 기다려지는 맛, 천원의 행복 하늘 마을 식당도 추억의 한 장면입니다. 오래된 친구를 만나면 늘 나오는 레퍼토리처럼 지금도 삼삼오오 신자들이 모이면 그때를 회상하며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또 합니다.

부족해도 단칸방에서 행복했던 신혼 시절과 같은 시간, ‘가난한 날의 행복이 이런 것일까. 지금은 번듯한 새 아파트에 입주하였는데 그때만큼의 열정이 없음을 반성합니다. 공동체의 온정을 충만하게 느끼게 해주신 신둔 본당 식구들,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글ㅣ박은희 루피나(신둔 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