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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와 사랑의 선물 ‘호스피스’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3-03-31 09:28:18 조회수 : 442

말기 암환자를 돌보는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에서 근무한 지 벌써 1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새로운 환자와 가족들을 만날 때마다 걱정과 불안, 두려움이 앞서곤 합니다. 하지만 점점 그들과 함께하며 처음에 느꼈던 불안은 사라지고 가족의 큰 사랑을 공유하게 됩니다. 이 소중한 여정이 저에게는 마치 선물 같아, 함께 하는 센터 식구들과 환자들에게 항상 감사할 뿐입니다.

 

의과대학을 마치고 수련 과정을 거치며 죽음을 돌보는 과정보다는 생명을 연장하는 치료에만 익숙해 있던 제가 처음으로 병이 아닌 사람을 바라보며 죽음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전공의 2년 차 때였던 것 같습니다. 백혈병 어린이의 주치의를 맡게 되었는데, 아버지가 건설현장에서 일하셔서 자주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환경이었습니다. 하지만 맑고 착한 아이였습니다. 아이가 항암치료를 받던 중 일주일 이상 원인 모를 고열이 계속되었고, 어느 날 밤 늦게 환자의 아버지가 찾아와 병원에 왔는데 왜 열이 계속 나며 원인도 모르는 거요?’라고 강력하게 항의했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열심히 설명했지만, 그럴수록 보호자는 더 흥분하며 급기야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그 순간에는 혈액암에 걸렸으니 당연히 열도 나고 악화될 수 있고, 나는 교과서대로 다 하고 있는데 왜 그럴까?’라는 생각에 흥분하는 보호자를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이후 제가 환자의 만 치료하는 기술자의 역할에 만족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됐습니다. 병의 관점에서 보면 당연히 생길 수 있는 일들이지만, 환자와 가족의 입장에서는 왜 이런 일이 나와 내 가족들에게 생겼는지 납득되지 않고 화가 날 수 있다는 것을 그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 이후 틈날 때마다 혼자 있는 아이를 방문해 위로했고, 듬성듬성해진 아이의 머리를 소독하고 이발해 주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아이의 마음에 좀 더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그전까지는 몰랐던 의사로서의 희열을 경험했습니다. 이때의 강렬한 기억이 이후에 끊임없이 저를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로 이끌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는 호스피스 환자들을 진료하고 생각하는 일이 저에게 충전이 됩니다. 가끔은 귀찮고 망설이는 마음과 싸우지만, 환자와 가족을 만나 그들의 두려움에 귀 기울이고 지켜보고,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위로하면서 마치 주일 미사를 다녀온 듯 마음의 평화를 찾는 저를 봅니다. 힘들 때마다 환자들의 눈물과 땀을 닦아주는 의사가 되라.”하고 말씀하시며 손수건을 선물해 주신 스승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틈이 날 때마다 환자들과 보호자, 센터 가족들, 동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기도합니다. 나도 모르게 행하는 잘못된 행동과 말로 상처입은 영혼들에게 참회와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올리면서 제게 주어진 소명을 돌아봅니다. 인간다운 삶이 훼손되지 않도록 지켜주는 것이 제 소명이고 업이라는 생각은 앞으로 어느 곳에 있어도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글ㅣ김세홍 마르코(가톨릭대학교 성빈센트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장가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