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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진 인생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3-03-23 09:17:26 조회수 : 429

저에게는 막내 형과 같은 동료가 있습니다. 나이는 저보다 어려서 동생이지만 형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의 만남은 공중 보건의 시절에 이루어졌습니다. 방문 보건(거동을 못 하시는 환자를 찾아가 돌보는 의료)을 맡았던 동생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명절에 자신의 돈으로 고기를 사서 어려운 환자들에게 선물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친구였습니다. 그런 동생의 어머님은 하동에서 녹차를 만드시는 명인이셨는데, 당신의 집에 스님이 머무르시면 아들들을 불러 함께 식사를 하고 차도 마시며 좋은 말씀을 듣는 시간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더불어 필요하다 싶은 말씀도 해 주셨습니다. “멀리서 진료를 보러 오는 환자는 꼭 봐줘야 한다. 얼마나 보고 싶으면 그렇게 멀리서도 오겠노.” 동생은 어머님의 말씀에 따라 꼭두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여러 곳에서 온 많은 환자를 돌보는 착한 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인듯싶었습니다.

 

공중 보건의를 마치고 각자의 길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던 어느 날, 동생으로부터 심상치 않은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 어머니가 일본에 여행가셨다가 뇌지주막하출혈로 쓰러지셔서 혼수상태야. 나 지금 일본이야. 기도해줘.” “내가 갈게.” “형이 와주면 너무 좋지. 내가 그쪽은 잘 모르는데 형은 잘 아니까 와주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병원을 맡기고 급하게 일본으로 향했습니다. 어머님은 뇌출혈로 의식이 없었고, 시술도 잘되지 않아서 뇌는 더 붓고 출혈은 많았습니다. 거기에 뇌경색까지 겹쳐서 거의 가망 없이 그저 심장만 뛰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어떻게든 살아계신 상태로 집으로 모셔가고 싶다는 동생의 말을 듣고 모든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은 의사인 제가 동행한다는 조건으로 비상약과 인공호흡기를 빌려 배로 이동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배 안 객실에서 동생과 어머니의 ‘9시간 마지막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동생은 좋았던 일, 슬펐던 일, 기뻤던 일, 감사한 일, 많은 이야기를 무의식의 어머니와 함께 나눴습니다. 부산항에 도착해 대학병원으로 모시는 도중에 어머님 상태가 안 좋아져서 근처 병원에 잠깐 들렀는데 동생이 막 울며 여기가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신 병원이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어머님은 아버지와의 마지막 인연까지 챙기고, 응급실에서 만 하루 동안 계시면서 당신과 인연을 맺은 많은 사람의 얼굴을 맞아주시다가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저는 동생 어머님께 최선의 선택을 해드렸는지 되물으면서 묵직한 마음을 안고 살아간다고 말합니다. 동생은 일본까지 날아와 같이 있어 준 저에게 항상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에게 더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론 서로에게 마음의 빚을 좀 지고 살아가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신경을 써주고, 조금 더 잘해줄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득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그 사랑에 대한 빚을 오늘은 조금이나마 어떻게 갚으면서 살아갈까 고민해봅니다.


글ㅣ유권 안토니오(내과영상의학과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