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고등학생과 함께 어머니가 진료실로 들어왔습니다. 진료실 의자에 앉은 학생은 어쩔 줄 몰라 쭈뼛거리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이야기하라는 듯 눈짓을 보냅니다. 뭔가 어려운 이야기를 하고픈 모양입니다. 학생은 느닷없이 진로 상담을 받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름대로 공부를 잘해서 의사가 되고 싶은데 어떠냐는 질문입니다. 어머니와 함께 진료실에 찾아온 것을 보면 진짜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저는 공부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많은 공부를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는 좀 알 것 같습니다. 그 비밀을 이야기해 드릴까요? 그 비밀은 아주 사소한 것에 있습니다. 많은 시간을 책과 씨름해야 하고, 잘 정리해야 하고, 반복적으로 보고 또 보고 외워질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어느 날 이런 비밀 아닌 비밀을 신앙과 더불어 생각해 볼 때가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하느님 나라를 갈망하면서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반성해 보았습니다. 그저 미사에 참례하고 신부님 강론 말씀을 마음에 새기면서 일주일을 보내면 참으로 다행이었습니다. 주중에 하느님 말씀을 기억하는 것은 특별한 의지를 다지지 않으면 힘든 일이었습니다. 시간을 투자해 하느님을 만나는 시간은 없고,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신앙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저 나름대로 예습과 복습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매일 미사에 대한 묵상을 아침에 하고, 그중에 마음에 와닿는 성경 구절을 적었습니다. 그리고 하루 중에 잊지 않기 위해 자꾸 쳐다볼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나만의 공책을 만들어 적고 또 적고, 보고 또 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직은 첫걸음마 수준이고 부족한 것이 많지만 그래도 느끼는 것이 달라진 것은 사실입니다.
먼저 신부님의 강론 말씀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더 기억하기 쉬워졌습니다. 조금씩 더 많은 양의 교육 콘텐츠들에 대한 공감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많은 시간을 예수님과 함께할 수 없어도 짧은 순간 예수님과 함께할 수는 있는 시간을 자꾸 만들었습니다. ‘예수님, 이 환자가 힘들어하는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예수님, 제가 이 환자에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예수님,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당신의 뜻이 있음을 이 환자분이 알 수 있기를 청해봅니다’ 이렇게 짧게 짧게 예수님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부탁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런 시간이 모이고 또 모여서 남들이 생각할 수 없는 시간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만의 공부법이 꼭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 예습과 복습을 통해 이해하고 외우고 숙달하는 것이 필요하듯이, 예수님을 더 사랑하고 예수님과 더 친해지고 싶다면 예수님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기억하고 익히는 것이 꼭 필요함을 다시 한번 상기해 봅니다.
글ㅣ유권 안토니오(내과, 영상의학과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