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에서 사목했을 때, 어린이 미사 때마다 아이들에게 강론하는 것이 꽤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날 복음 말씀에 좋은 비유를 들 수 있는 동화나 소설, 아이들이 좋아하는 방송 소재들을 각색해서 열심히 목소리를 변조해가며 이야기 해주면, 아이들은 눈이 초롱초롱해지며 호응해줬습니다. 한 달에 한 번 가정 주일을 정해서 부모님과 유치부, 초등부 자녀들이 함께 주일 미사에 참례하게 했는데, 장난기가 발동해 아이들에게 질문하면 아이들은 아주 정직하게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 대답했습니다.
한 번은 성가정 축일에 아이들에게 “성가정은 예수님과 요셉, 성모님께서 이루신 가정이에요. 요셉과 성모님은 아들 예수님에게 늘 모범을 보이시고 싸우지 않고 화목하게 지냈어요. 그래서 성가정이라고 해요. 우리 친구들 가정은 어떤가요? 우리 집은 맨날 아빠랑 엄마랑 싸운다!! 그런 집은 손들어보자!!” 이렇게 물으면, 아이들은 너무나 솔직하게 대답합니다. 그러면 부모님이 당황하며 아이들 손을 잡아끌며 수습하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럴수록 있는 힘을 다해 피하며 손을 듭니다. “우리 아빠 엄마는 매일 싸워요!” “우리 집은 하루에 세 번 싸워요!” “우리 아빠는 엄마한테 ‘너 죽을래?’라고 소리 질러요!”라며 여기저기서 부모님을 고발합니다. 뒤에 앉으신 교우분들은 아이들의 솔직한 대답에 배꼽이 빠져라 웃습니다. 저는 아빠, 엄마들의 저를 원망하고 증오하는(^^) 눈빛을 피하며 아이들만 보고 짓궂게 강론을 마무리합니다. ‘솔직하고, 정직하고, 순수한 우리 자녀의 마음을 잘 지켜주자’고 당부드리며 어린 시절의 예수님처럼 정직하고 순수한 자녀를 둔 여러분들을 존경한다고 병(病)주고, 약(藥)주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맑고 순수했던 아이들도 나이가 들면 점차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깨우치고,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명목으로 거짓말에 면역이 생기면 태연하게 ‘예’ 해야 할 것을 ‘아니요’ 하고, ‘아니요’ 해야 할 것을 ‘예’ 하게 됩니다. 나라의 최고 지도자부터 정치인들, 그리고 전 세계 방방곡곡에서 끊임없이 거짓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 자신을 살펴봅니다. 제 자신의 품위와 자존심을 지킨답시고 고개 숙이고, 인정할 줄 모르고, 위기만 모면하려 하고 짐짓 정의롭고 정직한 척하며 거짓 맹세까지 했던 시간이 떠올라 머쓱해집니다.
1508년 교황 율리우스 2세가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 대성당의 천장벽화를 그릴 것을 명령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사람들의 출입을 막은 채 300명 이상의 인물이 등장하는 600㎡ 크기의 대작을 혼자 그렸는데, 어느 날 천장 밑에 세운 작업대에 앉아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정성스레 그림을 그리는 미켈란젤로를 안타깝게 보고 있던 동료가 물었습니다. “지금 그리는 귀퉁이 인물화는 바닥에서 잘 보이지도 않는 부분인데, 뭘 그렇게 정성을 들여 그림을 그리고 있나? 대충 마무리한다고 해서 누가 알기나 한단 말인가?” 그러자 미켈란젤로가 대답합니다. “내가 안다네.”
하늘을 두고, 땅을 두고, 그리고 내 머리를 두고 맹세한다고(마태 5,34-36 참조)쉽게 말하고는 ‘예’ 해야 할 것을 ‘아니요’ 하고, ‘아니요’인 것을 ‘예’ 하면서 스스로를 속이며 ‘세상살이가 다 그런 거지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이렇게 말한다고 누가 알겠어?’라고 할 때, 바로 예수님께서 답하실 것입니다. “내가 안다네” 상상만 해도 부끄럽고 두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