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이던 1998년, 중고등부 미사 반주자 자리가 비었는데 피아노라고는 체르니 100번까지 친 것이 전부인 제가 해 보겠다고 손을 들어버렸습니다. 무식해서 용감했던 건지 모르겠지만, 성령이 임하셨던 모양입니다.
수녀님이신 큰이모께서는 얘기를 듣고 아무나 미사 반주하는 게 아니라며, 수녀원에 오르간을 수십년간 치신 수녀님이 계시니 한 번 와서 배우라며 수녀원으로 부르셨습니다. 가톨릭 성가 151번 ‘주여 임하소서’ 한 곡을 연습해서 갔는데, 오르간 주법이며 기본적인 손가락 번호도 잘 몰랐으니 아마 연주가 엉망 진창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연주가 끝나자 수녀님께서 딱 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손이 참 예쁘다.” 허무하기만 한 가르침이었는데, 손이 예쁘단 말을 듣고 와서 지금까지 25년동안 미사 반주를 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런 저런 가르침이 있었으면, 어린 마음에 겁나고 질려서 반주를 포기했을 텐데, 수녀님께서는 그걸 아셨던 모양인지 저의 하고자 하는 마음에 대한 칭찬을 ‘손이 예쁘다’로 표현해 주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중고등부, 청년 미사를 거쳐 지금은 가끔 주일 미사 반주자가 공석이 되면 나가곤 합니다. 그동안 실력도 꽤 늘었습니다. 화려한 연주는 못 하지만 분심 들지 않게 미사에 스며드는 반주를 할 정도는 됩니다. 미사 반주를 하며 신랑을 만나 결혼을 했고 아이도 둘이나 낳았으니, 제 인생에서 미사 반주는 가장 중심축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틀리고, 실수투성이이지만 반주를 할 때마다 오르간 너머로 십자가를 바라보며 기도합니다. ‘저의 반주로 여러 사람이 기쁘게 성가를 부르게 해 주셔서, 부족한 저를 이렇게 사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 말입니다.
글ㅣ한제원 가브리엘라(상하 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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