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주보

수원주보

Home

수원주보 기사

동방박사는 누구?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3-01-06 09:14:04 조회수 : 589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공현(公顯)이란 공식적으로 나타내 보이다라는 뜻으로 예수님께서 온 인류를 위한 구세주로 드러나심을 의미합니다. 삼왕이라고도 칭해지는 동방 박사 세 사람(가스팔, 멜키올, 발타살)은 이방인들로서 구세주 예수님을 처음 뵙고 경배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여정은 절대 순탄치 않았습니다. 머나먼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마태 2,1 참조)그 별의 인도를 따라 힘든 순례 끝에 베들레헴에 도착해 구세주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찬양하며 경배하고 정성껏 준비한 선물,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봉헌합니다(마태 2,11 참조).

 

저는 주님 공현 대축일만 되면 독일에 갔을 때가 생각납니다. 라인강 옆에 자리 잡은 웅장한 쾰른 대성당을 보며 동방 박사 세 사람의 유골이 모셔져 있는 찬란한 황금 유골함과 오늘 복음의 장면을 그린 병풍형 그림을 봤던 순간이 항상 떠오릅니다. 그러면서 오늘 복음의 장면들을 머릿속에 그려봅니다. 이스라엘로부터 동쪽으로 멀리 떨어진 페르시아 제국에서 활동하던 천체에 지식이 깊은 동방박사들이 별자리를 살피던 중 유난히 빛나는 큰 별을 발견합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에게 전해지는 구세주의 탄생에 관한 예언서의 내용을 떠올리며 이스라엘을 비추는 그 큰 별빛을 따라 기나긴 여정을 하게 됩니다. 성경과 율법을 모두 암기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제사장과 학자들은 오히려 메시아 탄생을 모르고 있었고(마태 2,3-4 참조) 이 이방인들의 박사들은 별을 보고 메시아 탄생을 믿고 직접 찾아 나섰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는 것은 구원의 땅에 살면서도 자신들의 구세주 탄생인데도 이방인들에게 즉 외국인들에게 자신들의 나라 소식을 듣는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임신한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미사를 참례하고 유아세례를 받고 복사를 서고 예비신학생 모임을 다녀 신학교를 우수한 성적이 아닌 우스운 성적으로 졸업하며 사제가 된, 신앙으로는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헤로데와 율법 학자 같은 저에게 동방박사 같은 이교인들은 제가 일하는 성라자로 마을에 많이 찾아와 구세주의 사랑을 가르치고, 실천하고, 전하고 가십니다. 머나먼 미국 한인사회에서도 오고, 경상도 전라도에서도 오고, 가톨릭 단체가 아닌 소방서, 경찰서, 일반 기업과 공공기업에서 우리 마을의 한센병 가족들에게 찾아와 자신들이 정성껏 준비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봉헌하고 가십니다. 저는 또 다른 예수님인 우리 한센 가족들과 매일 함께 지내면서도 예수님을 몰라보는데, 오히려 머나먼 곳에서 찾아온 이방인들이 우리 마을의 예수님을 알려주고, 깨우쳐주고 가십니다.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이 이방인들이었던 동방 박사들에게 구세주 탄생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자존심도 상하고 부끄러웠듯이 저도 성라자로 마을을 찾는 저보다 더 커 보이는 많은 방문객에게 알량한 자존심도 상하고 주님께 너무나도 부끄럽고 죄송함을 금하기 힘들 때가 너무나도 많음을 고백합니다.

 

존경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동방 박사의 모습을 기억하며 우리도 하루하루 구세주 예수님이 비추시는 별빛을 잘 따라가고 주님께 올바른 예물을 드리는 삶을 살아갑시다. 감동을 주는 예물을 바쳐 우리의 삶이 풍요로워질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아울러 우리 모두를 위해 공적으로 드러나신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한 해를 시작합시다. 아멘.


 글ㅣ한영기 바오로 신부(성라자로 마을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