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가톨릭대학교 성빈센트병원 호스피스 완화의료 병동에서 근무하는 의사입니다. 전문의 자격증을 따고 이곳에서 일한 지 이제 막 1년을 채워가는 아직은 햇병아리 호스피스 의사이지요. 더불어 세례를 받고 성당에 다니기 시작한 지 만으로 1년이 막 지난 새내기 신자이기도 합니다.
어렸을 때는 열심히 성당을 다녔지만, 공부를 핑계로 성당에 잘 나가지 않게 되면서 흔히 말하는 나이롱(?) 신자로 지내던 제가 세례를 받을 결심을 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이곳에서의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대전성모병원에서 수련을 받던 전공의 시절, 성빈센트병원 호스피스 완화의료 병동으로 두 달 정도 파견근무를 오게 됐습니다. 병동의 분위기가 무겁고 슬플 것이라는 막연한 제 선입견이 틀렸음을 느끼는 데는 며칠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호스피스 완화의학은 암 자체를 치료하는 것은 아니지만 환자와 가족들을 우선으로 생각하면서 돌봄을 행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됐으며, ‘임종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가 아닌 ‘삶의 남은 시간을 소중한 사람들과 의미 있게 보내는 환자들’이 점차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곁에는 예수님과 성모님이 계셨습니다.
이곳은 가톨릭 병원답게 병실마다 십자고상이 걸려있고, 병동 가장 환한 곳에 있는 작은 정원에는 성모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환자·보호자들이 혼자 기도드리기도 하고, 때로는 수녀님과 손을 잡고 함께 기도드리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몸은 병마로 고단하지만, 주일이면 꼭 성당에 가고 싶어 하던 환자와 임종을 앞둔 환자에게 좋아하던 성가와 성경 구절을 들려주며 마지막 작별의 시간을 보내는 보호자, 병자성사를 위해 병동을 방문해주시는 신부님과 수녀님들까지.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마음 한구석에 잠들어있던 하느님을 향한 마음이 다시 깨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어느 순간부터 병동에 걸려있는 십자가에 계신 예수님과 성모님께 기도 드리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호스피스 완화의료 병동에서 보낸 두 달의 시간은 제게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이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하느님을 다시 마주하게 된 후 교리 수업을 신청했고, 세례를 통해 진정한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세례명을 성모님의 애칭을 딴 ‘스텔라’로 정하며 성모님께서 보여주신 하느님에 대한 순명과 사랑, 예수님과 함께하신 신앙의 길을 따라가기로 했습니다. 또 전문의가 된 후의 진로를 고민하던 제게 이곳에서의 경험은 마치 ‘선원들을 이끄는 밤바다의 별’처럼 가야 할 길을 알려주었고, 저는 하느님과의 만남을 목전에 둔 환자들의 소중한 마무리를 함께 하는 의사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됐습니다.
주님 공현 대축일은 동방 박사들이 별의 인도를 따라 아기 예수님을 찾고 경배드린 것을 경축하는 날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2019년 주님 공현 대축일 미사 강론에서 “예수님을 찾기 위해서는 전혀 다른 여정을 시작해야 하며 선택의 길, 그분의 길, 겸손한 사랑의 길을 택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제게는 호스피스 완화의료 병동에서의 근무가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그분의 길을 따라가는 길이며 사랑의 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사랑의 길을 따라, 환자분들의 마지막 시간을 평안히 보낼 수 있도록 돕는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글ㅣ김보경 스텔라(가톨릭대학교 성빈센트병원 호스피스 완화의학과 교수)